[DBR]금융위기, 석학에 묻다<3>

  • 입력 2008년 11월 1일 02시 58분


집값 거품 붕괴 확산 땐 美보다 신흥국가 더 위험

《동아일보는 KAIST 금융전문대학원(금융MBA스쿨)과 공동으로 세계적 석학들과 릴레이 인터뷰 및 대담을 갖고 최근 금융위기에 대한 대가들의 분석과 대안을 전해드립니다. KAIST는 금융MBA 육성을 위해 스티븐 브라운 뉴욕대 교수, 레인 휴스턴 런던 임피리얼칼리지 교수, 제임스 실링 시카고 드폴대 교수, 제이 리터 플로리다대 교수 등 4명의 금융 석학을 초빙했습니다. 세계 최고 금융 전문가들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부동산 금융 대가 제임스 실링 시카고 드폴대 교수

“미국발 부동산 불황이 글로벌 주택 경기 침체로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자산의 대부분을 주택에 투자하는 신흥 시장에서는 부동산 경기 침체의 여파가 훨씬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동산 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제임스 실링 교수는 최근 금융위기와 관련해 이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로스앤젤레스나 시카고 같은 미국 대도시의 경우 집값이 각각 도시 근로자 연평균 소득의 7배, 4배 정도에 불과했지만 인도 뭄바이의 경우 15배에 달할 정도로 주택가격 거품이 심각했던 터라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선진국보다 개도국이 더 고통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현 미국의 주택시장 상황이 대공황 때보다 더 나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동의한다. 미국 주택시장 규모는 약 20조 달러다. 하지만 이 중 미결제 주택담보 채무가 10조6000억 달러에 달한다. 2006∼2008년 미국의 실질 주택가격이 21% 하락하면서 주택담보대출(home equity loan)로 집을 산 사람들이 특히 타격받고 있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자기 돈 한 푼 없이 100% 주택담보대출로만 집을 산 사람들이 미국 전체 가구의 6분의 1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집값 하락으로 9조4000억 달러의 주택담보대출 중 6조 달러가 사라진 상태다. 2분기 말 현재 압류당한 주택의 비율도 제2차 세계대전 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지표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과거와 현 부동산 경기 침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부동산 대출(모기지) 금리가 너무 높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시장 안정을 위해 연방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까지 낮췄지만 부동산 대출 금리는 6∼7%대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정책 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모기지 금리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시장에서 사고팔려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망설이고, 매수 의욕이 있는 사람들도 부동산 가격이 더 하락할까 두려워 매수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집값 하락과 대출 금리 상승이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영국, 덴마크, 스페인 등 유럽 각국과 중국, 인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신흥시장의 주택가격 역시 큰 폭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주택 경기가 심상치 않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 경제 대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단기간에 축적한 부의 대부분을 주택 구입에 투자한다.

흔히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의 집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가장 비싼 곳은 인도 뭄바이로 평균 집값이 근로자 연간 소득의 15배에 달한다. 서울도 9배로 높은 편이다. 반면 로스앤젤레스나 시카고 같은 미국 대도시는 이 수치가 각각 7배, 4배 정도에 불과하다. 이머징마켓 주택시장에 상당한 거품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미국에서도 볼 수 있듯 경제 상황이 불안해지면 가장 먼저 주택시장이 타격을 받는다. 이머징마켓의 주택 구입자들은 항상 이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 주택경기의 회복은 언제쯤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하나.

“일단 미국 부동산의 핵심인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지역의 상황이 나아져야 한다. 집값이 하락한 만큼 수요자들이 생겨야 하는데, 큰 폭의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요는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둘째, 주택담보대출에 관한 신용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의 3개월 만기 국채 수익률은 2.1%,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5% 정도로 실질 금리가 ―2.4%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6.7%에 달한다.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인데 대출 금리가 이렇게 높다면 수요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현재 미국 주택 재고의 처분기간은 약 10.9개월이다. 이 수치의 역사적 평균치는 3, 4개월에 불과했는데 현재 11개월로 급증한 상태다. 따라서 이 재고 처분기간이 5, 6개월 정도로 떨어져야 주택의 초과 공급량도 줄어들 것이다. 이때쯤 주택 가격이 안정될 것이다. 빨라도 내년 1, 2분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FRB의 금리 인하가 주택경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경제지표를 검토해 볼 때 집값 하락폭이 클수록 경기침체가 심각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경제는 작년 12월부터 침체(recession)에 접어들었다. 벌써 11개월째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2차 대전 후 미국 경제가 가장 오랫동안 침체기에 빠졌던 기간이 16개월이었다. 가장 최근 두 번의 불황은 불과 8개월만 지속됐을 뿐이다. 당시 FRB는 금리를 대폭 내렸다. 이것이 주식 및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인한 저가매수 욕구와 맞물려 단기간 내에 소비를 촉진시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자신감 회복이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냐’가 아니라 ‘안정화’ 그 자체다. 사람들이 돈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도록 해 주는 게 중요하다. 대출자들이 자신감과 편안함을 느끼려면 6∼9개월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제임스 실링 교수는

실링 교수는 미국 퍼듀대에서 경제학(부동산 금융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위스콘신주립대 부동산 및 도시토지경제학 연구소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시카고 드폴대에 재직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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