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수술 마친 경제… 체질개선 없이는 완치도 없다

  • 입력 2008년 11월 1일 02시 58분


■ 세계 - 한국경제 4가지 시나리오

① V字형 회복- 내년 상반기 모든 위기 수습 ‘장밋빛 전망’

②U字형 회복- 내년에 경기저점 찍고 2010년부터 기지개

③L字형 침체- 전세계 동시다발적인 불황 4∼5년간 지속

④불안 확산- 글로벌 금융회사-거대기업 연쇄부도 사태

세계 경제는 이제 막 응급수술을 마친 심장마비 환자와 같다. 무리한 차입 투자, 분에 넘치는 소비생활, 적절한 감독의 실패 등 그동안의 잘못된 생활습관이 누적된 결과다. 일단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 각국의 신속한 대응으로 막힌 혈관을 뚫어 시장에는 자금이 다시 돌 기미가 보인다. 그러나 언제 다시 증세가 도질지 알 수가 없다. 비록 위기가 다시 오지 않는다 해도 완전한 회복을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향후 세계 및 한국 경제가 건강을 빠르게 회복할지, 아니면 1930년대 공황에 버금가는 파국의 길로 치달을지 미래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없다.

전문가들의 진단과 최근 발표된 경제연구기관의 경제 전망들을 종합하면 크게 네 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 시나리오 1: 조기수습

전 세계 경제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모든 위기를 수습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른바 V자형 회복. 이 같은 최상의 결과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이번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던 미국 주택가격의 하락이 이른 시일 내에 멈춰야 한다. 이 경우 금융기관의 손실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침체에 빠진 미국의 소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미국의 소비는 세계 경제의 엔진이다.

또 범세계적인 국제공조 체제가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각국도 적재적소에 유동성 공급을 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안정되면 한국도 금리와 환율이 하락하면서 가장 큰 위험요소인 가계부채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여기에 각종 경기부양책과 규제 완화가 추진되면 2009년 하반기부터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가 빠르게 살아날 수 있다.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경상수지가 개선되고 미국 금융위기가 안정된다는 전제하에 한국의 성장률도 4%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아직 금융부문에서 부실의 깊이조차 드러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견해가 다수다.

○ 시나리오 2: U자형 회복

2009년에 경기가 저점을 찍고 2010년부터 회복된다는 시나리오다. 금융위기가 이미 각국의 실물경제 지표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만큼 한동안의 불황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U자형 경기곡선에서는 금융기관의 추가 도산 등 큰 충격은 없지만 침체된 실물경기가 회복되는 속도도 완만하다. 선진국의 침체가 적어도 내년까지는 이어지는 가운데 신흥국들도 수출 둔화를 내수 성장으로 만회하기에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일자리 수나 부동산 시장 등 지표를 볼 때 경기침체가 2년 정도 이어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전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3: L자형 글로벌 침체

‘U자형 회복’과 함께 가장 많은 전문가가 예상하는 수순이며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2000년 이후 지속됐던 글로벌 저금리 시대와 선진국의 소비 호황이 막을 내리면서 세계 경제는 앞으로 상당 기간 각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의 부채를 줄이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써 가면서 어떻게든 금융공황을 막을 것”이라며 “단, 재정을 많이 투입할수록 실물경제에 주는 충격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응급처치의 후유증이 생기는 만큼 경기가 쉽게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2009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과도했던 설비투자의 조정이 불가피하고 일부 지역이 아닌 세계 각국의 경기가 동시에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불황의 장기화가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고성장세로 세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중국 등 신흥국들이 침체를 겪는다면 충격은 훨씬 커질 수 있다.

한국 경제도 수출 둔화와 고용 및 투자의 악화로 2%대 이하의 낮은 성장률이 4∼5년간 지속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산 디플레 및 가계부채 증가, 내수 침체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의 부도, 일부 대기업과 부실 금융사의 청산이 우려된다.

○ 시나리오 4: 금융불안 확산

글로벌 금융회사 또는 거대 기업의 부도가 이어지고, 신흥국의 국가부도 사태가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이다. 세계 경제는 파생상품으로 인한 부실이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 부도율이 치솟으면서 투기등급채권의 부실화 여지도 많다. 이 밖에도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와 금융기관 부실화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한 유가의 재급등 △미국 신정부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무역마찰 등도 잠재된 리스크 요인이다. 한국도 글로벌 불황이 국내 기업 실적에 타격을 주고 이것이 다시 금융불안을 야기하는 실물-금융 간 악순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금융시장의 패닉이 당분간 이어지는 수순이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상완 상무는 “신흥국들에 자칫하면 도미노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그러면 한국 외환시장도 충격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분야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점과 조언

재정- “SOC지출 10조 늘면 성장률 0.8%P↑”

세금- “세율 낮춰 소비- 투자 여력 확충해야”

금리- “금리 더 내려 가계-기업부담 덜어줘야”

기업- “규제는 풀어주되 부실 구조조정 병행”

가계- “부채 조기상환 등 재무구조 건전화를”

한국 경제가 실물 경기 침체라는 또 다른 위기를 마주한 가운데 위기의 불길을 진화하기 위한 대응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다음 주 중 경제위기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재정 지출과 감세로 수요를 진작하는 경기부양책뿐 아니라 부실기업 및 금융회사 정리 등 구조조정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환부를 수술하지 않으면 건전한 부문으로 부실이 전이될 수 있고, 각종 지원 대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적극적 경기부양책 총동원해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풀고, 세금은 깎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요약했다.

모두 경기 침체 상황에서 총수요를 늘리기 위한 정책들이다. 가계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소비(기업의 경우 투자) 여력을 늘리거나, 정부가 직접 수요자로 나서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2005년 발표한 ‘BOK 04’ 모형에 따르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같은 정부의 직접적인 자본 지출이 1조 원 늘어날 때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08%포인트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예를 들어 SOC 투자가 10조 원 늘어난다면 경제성장률을 0.8%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같은 지출 확대뿐 아니라 금리 인하 등 기타 경기부양책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총 1∼2%포인트가량 움직일 여력이 있는 것으로 계산했다.

강 교수는 “순수한 시장의 힘만으로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수 있겠지만 정부의 지출 확대로 3%대 중후반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서 “감세는 경제에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지금으로서는 단기적인 영향을 주는 재정 지출 확대가 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재정정책분석팀 이남수 팀장은 “경기부양책을 쓸 뿐 아니라 경기 침체 시 타격을 받는 저소득층 등 사회취약계층 지원에도 고루 재원을 배분해야 재정 지출의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들의 소비 여력을 늘려줄 추가적인 감세 조치 필요성도 제기됐다. 굿모닝신한증권 이성권 이코노미스트는 “주가 하락 등으로 개인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역(逆) 부의 효과’로 개인들이 소비를 늘리기 어렵게 됐다”면서 “정부는 소득세율을 과감하게 낮춰주는 등 소득 보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부동산 연착륙, 구조조정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대표적인 취약점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경우 가계와 건설업계가 부실해지는 것은 물론 저축은행을 시작으로 금융계 전반으로 위험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우려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부동산 부문에서 제일 시급한 곳이 저축은행”이라면서 “선제적으로 대응해 부실 저축은행을 정리하고 자본을 투입하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실물 경기 침체는 필연적으로 대량 실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실업이 늘면 내수를 더욱 침체시켜 경기의 불황이 깊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대우증권 이효근 경제금융팀장은 “정부가 고용 불안정성 등에 대비해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가계 역시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대출을 서둘러 갚는 등 재무구조를 건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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