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표 악화 -쌓이는 미분양… 실물 위축 조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급한 불은 일단 껐다. 1997년 외환위기처럼 달러가 모자라 국가가 부도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국가적 시련은 이제부터’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첫 관문을 겨우 통과했을 뿐 기나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피나 원-달러 환율 등 각종 금융지표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뿐이다. 개인과 기업, 정부가 모두 혹독한 시련을 견딜 준비를 해야 한다. 》
우선 한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수출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중국의 국가정보센터는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9.8%로 2003년 이후 6년 만에 한 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소비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0.3%)를 기록하며 7년 만에 가장 부진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감원 한파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수출입 물량을 실어 나르는 하늘길과 바닷길이 먼저 얼어붙었다. 31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9월 항공화물은 2001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이후 처음으로 7.7% 줄었다. 원자재와 곡물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 시황을 나타내는 ‘벌크선운임지수(BDI)’는 10월 30일 885로 5월 20일 11,793에 비해 7.5% 수준으로 축소됐다.
내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31일 발표된 각종 실물경기 지표(통계청 ‘9월 산업활동 동향’, 한국은행 ‘10월 기업경기 조사’, 지식경제부 ‘3분기 제조업 BSI 조사’)에는 일제히 빨간불이 켜졌다. 가계가 짊어진 빚은 660조 원을 넘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 아파트도 20만 채 넘게 쌓여 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한국 경제의 지뢰들이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하지만 한국은 세계 경제의 위기 때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세계 13위 국가까지 올라왔다. 이번 금융위기 쓰나미는 1929년 대공황 같은 세계사적 국가서열 재편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미국은 세계 경제리더 이미지에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아이슬란드 우크라이나 헝가리 등 경제 기초체력이 약한 국가는 줄줄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 중국은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도전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0월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번 위기가 끝나면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력 순위가 바뀔 것이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다”고 역설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다행히 한국에는 희망적인 요소도 많다. 재정이 튼튼하고 수출구조도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다변화돼 있다. 전 국민이 똘똘 뭉쳐 외환위기를 이겨낸 경험과 자신감도 있다. 미국 및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호재(好材)도 대기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번을 계기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낡은 제도와 관행을 뜯어고치고 체질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본무대는 지금부터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