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 은행권 ‘속으로 끙끙’

  • 입력 2008년 11월 3일 02시 55분


李대통령 “흑자도산 없게 하겠다” 거듭 강조

일부기업 “설마 부도내랴…”

자산 매각 꺼리며 버티기

“흑자 도산이 없게 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금융당국이 고민에 빠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금융회사든 일반 기업이든 흑자 도산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시정연설을 하는 등 비슷한 발언을 거듭했다.

이는 ‘옥석(玉石)을 가려 회생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 지원하겠다’는 금융당국의 기본 방침과 큰 뉘앙스 차가 있는 것.

일부 건설업체 등의 경우 보유 부동산의 가치가 떨어지고 거래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자산의 장부가치를 근거로 계산한 당기순이익 등을 들이대며 “우리는 일시적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는 흑자기업”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금융당국이 앞장서서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기는 쉽지 않다. 회생 가능성이 큰 기업은 지원하도록 은행을 독려하겠지만 도저히 안 되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은행으로서는 더 답답한 표정이다.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은 자산매각 등을 통해 대출을 줄이도록 압박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은행의 외화차입에 지급보증을 서 주고 한국은행이 은행채까지 사준 상황에서 “비올 때 우산 빼앗지 말라”는 대통령의 발언(지난달 13일 라디오 담화)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 당국이 ‘기업들이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게 압박하라’고 다그친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웬만하면 살리고 보라’는 것도 문제다. 특히 ‘은행이 설마 부도야 내겠느냐’는 듯이 자산 매각 등을 꺼리는 기업들 때문에 구조조정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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