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급전으로 대출 돌려막기… 건설사-中企 피가 마른다

  • 입력 2008년 11월 3일 02시 55분


■ 미분양-키코 피해 기업들 줄도산 공포

금융권서 만기연장은 안해주고 상환 독촉… 자금난 가중

기업 쓰러지면 은행도 위험… “정부 신용경색 풀 대책을”

경북 지역에 대규모 리조트 건설을 추진 중이던 이앤씨건설은 공정이 70% 남짓 진행된 상태에서 자금 사정이 악화돼 지난달 28일 최종 부도를 맞았다. 100개사가 넘는 협력업체가 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그뿐 아니다. 아이엠종합건설 석우종합건설 등 중소형 건설사들이 지난달 말 줄줄이 부도를 맞았다.

○ 부동산발 기업 도산 우려

지난달 31일에는 도급순위 40위권의 중견 건설사인 S건설이 1차 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기업어음 회수를 요구하던 한 저축은행이 어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또 한 중견 건설업체는 최근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만기가 돌아오자 현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조건으로 만기를 연장하는 방법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시장의 경색과 부동산 등 실물경기 침체가 기업들을 ‘연쇄 부도’의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금융권이 2004년부터 급증한 부동산 PF 대출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만기 연장을 꺼리면서 건설사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 ABCP란 건설사의 매출채권 등 자산을 담보로(Asset Backed) 발행되는 기업어음(CP)이다.

아파트 미분양 사태 등을 겪는 건설업체와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있다. 기업 도산은 은행권의 재무 건전성까지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한 중견 건설업체의 재무담당 임원은 “지난달 만기가 돌아온 100억 원대의 ABCP를 높은 금리를 제시하며 가까스로 연장했다”며 “이런 식으로 금융회사들이 상환을 요구하면 버틸 건설사가 몇 곳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중소 조선, 철강회사도 흔들

‘워크아웃 신청설’이 돌고 있는 C&그룹은 운영자금이 바닥나 8월부터 전남 목포와 경남 거제에 건설 중인 조선소와 선박 건조 공사를 중단했다.

C&그룹의 부채는 1조3000억 원에 이른다. C&그룹은 신우조선해양, 진도F&, C&우방랜드 등 계열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제값을 쳐 주려는 매수자를 찾지 못했고 금융권마저 자금 지원에 난색을 보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강 유통업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정제강이 지난달 20일 당좌거래가 정지됐고 삼보철강은 22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들 업체는 환율이 1000원을 밑돌던 상반기(1∼6월)에 큰 규모의 철근 수입 계약을 했다가 환율 급등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봤다.

철근 등을 수입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수요 업체들이 현금 대신 120일짜리 어음을 주고 있지만 어음 할인이 쉽지 않아 만기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9월 말 현재 416조7000억 원. 한국은행이 중소기업 10만183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연체율은 지난해 말 0.69%에서 올해 6월 말 0.83%로 0.14%포인트 증가했다. 한 중소기업의 재무담당 임원은 “하루가 급한데 키코(KIKO) 피해를 지원하겠다는 정부는 기준을 정하고 평가하는 데만 한 달 이상 지체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자산 디플레-실물경제 침체가 변수

은행권의 단기 유동성을 보여주는 원화유동성 비율은 2008년 8월 말 108%로 감독당국의 지도비율(100%)을 넘는다. 은행권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0.7%로 기업 대출 연체율(1.5%)보다 낮다.

문제는 금융시장 불안과 자산 디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면 ‘실물경기 침체와 금융시장 불안-기업 대출 부담 증가-금융기관 부실 확대-기업과 금융기관 도산’ 등의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은행마다 건설업체들을 끼고 있어 건설업체가 도산하면 특정 은행뿐 아니라 금융권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며 “개별 은행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수출과 내수 침체 등으로 중소기업의 신용위험도 커질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4분기(10∼12월)에 14.2%, 내년에는 8.3%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이날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중소기업 대출 취급 시기에 따른 연체율 곡선이 올해가 과거 2년보다 가파르다”며 “향후 연체율이 더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수 급락을 막는 부양책을 쓰고 금융회사의 유동성 감독을 철저히 하되 건실한 기업의 자금이 일시적으로 부족하면 신용경색을 뚫어 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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