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높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국가 부도위험도를 반영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가 내려갔고, 외환시장에서는 원화가치가 반등하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또한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 순매수를 재개했다. 물론 주식시장의 순매수는 공(空)매도한 물량을 되갚기 위한 일시적 쇼트커버링(short covering)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통화스와프 계약의 영향이라는 사실까지 폄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재 미국이 통화스와프 계약을 한 곳은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멕시코 브라질 싱가포르 등 세계 경제에서 위상이 만만치 않은 나라들이다. 이번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이 한국에 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연이은 실책으로 신뢰를 잃어온 정부의 경제팀이 회심의 적시타를 한 방 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외환보유액의 60% 이상이 미국 국채라는 점이 협상력을 키웠다고 하지만 이번 협정의 의미는 작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위기를 벗어난 것인가’라는 점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과 체결한 통화스와프 협정은 유효기간이 6개월로 한시적이며 300억 달러로 금액이 제한돼 있다. 스와프를 요청하면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조건들을 볼 때 이번 통화스와프 계약은 미국에 마이너스 통장을 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 말은 한국이 그 돈을 사용한다면 만기에 반드시 되갚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달러를 갚는 시기를 늦출 수는 있지만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사용했을 때 발생한다. 지금까지 외국은행들은 한국이 빌려간 달러를 못 갚을까봐 우려했지만 이제 마이너스 통장을 깔고 있으므로 돈 떼일 것을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막상 빌린 돈을 갚을 때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꺼내 상환한다면 외국은행들은 다음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빚을 돌려 막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 돈을 꺼내 쓰는 순간 달러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면서 달러 빌리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통화스와프라는 마이너스 통장은 마치 핵무기처럼 ‘있지만 써서는 안 되는’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6개월간 시간을 번 것일 뿐 덤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박경철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