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보완기능도 하지만 맹신하단 낭패
《한미 간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으로 코스피가 사상 최대 폭으로 올랐던 지난달 30일. 유독 우리투자증권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며 1만2350원이던 전날 종가가 장중 1만500원으로까지 곤두박질했다. “우리증권이 리먼브러더스와 관련해 큰 손실을 봤다”는 루머 때문이었다.
루머 발원지 추적에 나선 회사 측은 곧 한 증권정보사이트의 사이버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J(필명) 씨를‘범인’으로 지목했다. J 씨가 투자자들과의 채팅에서‘우리투자증권이 리먼브러더스 관련 파생상품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이 소문이 확대재생산된 것.
우리증권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J 씨는 “확인 결과 우리증권은 리먼브러더스와 관련이 없었으며 우리증권 주주와 회사에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인터넷에 게재했다.》
심지어 국내 굴지의 한 시중은행은 ‘부도 직전’이라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다 지난달 애널리스트들에게 세세한 재무현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 통렬한 분석, 아이디어로 인기
이른바 사이버 애널리스트나 논객들이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까지 한 포털사이트에서 활동해 온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논객은 요즘의 글로벌 경제위기 양상을 일부 예견한 인물로 알려지면서 인기가 급부상했다. 이 논객은 돈을 받고 투자 자문에 응하는 전업 애널리스트는 아니지만 현 정부의 정책 실패, 세계경제의 모순 등을 막힘없이 설명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달 말에는 “코스피의 2차 저점은 500”이라는 충격적 전망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실제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나 직업 등 신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재야의 논객들은 이처럼 과감한 분석과 종목 추천, 경제 현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무기로 투자자들에게 접근한다. 투자자의 눈치를 보면서 무조건 매수 보고서를 내고, 무엇이든 ‘콕 집어 주는’ 맛이 없는 제도권 애널리스트의 대안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현재 인터넷의 각종 증권정보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애널리스트는 300∼400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 영향력에 비해 검증 덜 돼
문제는 이들의 영향력에 걸맞은 감독이나 검증 시스템이 없다는 것. 증권정보사이트의 경우 유사 투자자문업으로 신고 대상이 될 뿐 당국의 감독 대상은 아니다. 여기다 제도권 애널리스트들은 증권사라는 틀 내에서 실력이나 윤리의식 등이 검증되지만 ‘사이버 논객’들에겐 그런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논리 비약적인 의견이나 미확인 루머를 퍼뜨리는 경우도 있어 불필요하게 시장이 요동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 증권정보사이트 관계자는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은 자신이 추천한 종목이 안 오르면 실력 없는 사람으로 찍히고 수익률이 좋은 전문가에게는 쏠림현상이 일어난다”며 “제도권의 애널리스트야말로 회사 이익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들 중 일부가 근거 없는 정보를 활용해 투자를 유인하거나 악성 루머를 퍼뜨려 주식 불공정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이들이 일반인의 정부 정책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이들에게 정책 방향을 설명하거나 자료를 제공하는 등 소통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