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투자의 가장 큰 리스크는 ‘시간’이다

  • 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7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끔찍했던 한 달이 끝났다. 한국에 제2의 외환위기가 다가온다는 공포감이 외환시장과 증시를 폐허로 만들었던 10월 마지막 열흘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논란이 많았던 키코를 샀거나 달러나 엔화 부채를 갖고 있는 기업들이 입은 손실은 고통스러운 수준을 넘어섰다.

개인투자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각종 주식형 펀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반토막이 났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었던 주가연계증권(ELS)도 시장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다. 안전한 해외 투자를 위해 환 헤지(위험회피)를 했던 투자자들도 엄청난 청산비용에 할 말을 잊었다.

세계 증시의 반이 날아간 그라운드 제로에서 많은 투자상품이 온전하게 보전될 수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기다릴 수 없는’ 금융상품, 즉 특정 날짜에 청산되도록 돼 있는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손실을 입었다.

우리는 흔히 각종 리스크에 대해 얘기한다. 국가부도 리스크, 시장 리스크, 개별 기업의 부도 리스크와 거래 상대방 리스크까지 고려한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가공할 만한 리스크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옵션이나 선물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은 만기의 무서움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다. 자금이 잘 돌지 않을 때 다가오는 어음이나 수표 결제일은 저승사자가 오는 날이란 것을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다.

자금 마감을 위해 동분서주해본 일이 별로 없는 일반 펀드 투자자들은 만기일이나 청산일이 이렇게 가혹한 변수가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외환시장이 난리를 치던 10월 넷째 주 환 헤지를 한 투자자들의 경우 청산 날짜가 하루만 차이 나도 10%의 추가비용이 발생했고 며칠 사이에 20%까지 오르내렸다.

ELS도 마찬가지다. 코스피가 900 밑으로 내려가던 날 대부분의 ELS 상품은 녹인(Knock-in)됐다. 전날까지 원금을 유지하던 상품이 하루 사이에 30∼40%의 손실이 확정됐다는 얘기다. 그나마 만기일이 남아 있는 상품은 회복할 기회가 있지만 만기가 돌아온 불운의 투자가들은 꼼짝없이 당했다.

워낙 천재지변 같은 난리통에 발생한 예외적 경우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특정일’의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상품은 그만큼 위험이 높다. 투자란 내가 선택한 시간에 청산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은 가장 큰 리스크다.

이상진 신영투자신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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