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때문에 환매 권하지 않았다”

  • 입력 2008년 11월 8일 03시 01분


■ 증권사 직원들 무리한 투자권유 자성의 목소리

“사실 지난해 코스피 2,000 선을 넘었을 때 펀드를 환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식형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자금을 얼마나 ‘순유입’시키는지에 따라 특별성과급을 받고 인사고과에도 반영돼 적극적으로 환매를 권하기가 쉽지 않았다.”(국내 대형 증권사의 한 영업사원)

“지금 경기가 안 좋아 종목 투자의견 ‘매도’를 내는 것이 맞다. 그러나 매도 의견을 내면 해당 업체가 항의해 정보 얻기가 어려워지고, 펀드매니저들도 싫어해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표시했다. 자괴감이 든다.”(국내 중소형 증권사 애널리스트)

증시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의 항의와 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평소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했던 증권사 내부에서도 무리한 투자 권유에 대한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7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40.27%. 나이스채권평가에 따르면 ELS 10개 가운데 8개가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한 상태다.

증권사들이 투자 위험을 알리는 ‘경고등’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는 증권업 자체의 구조적인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국내 증권사는 61개로 대부분 주식매매 및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로 수익을 내고 있어 치열한 판매경쟁이 불가피하다.

국내 한 중소형 증권사는 올해 초 주가연계펀드(ELF)를 전략상품으로 선정해 판매를 독려했다. 이 회사가 9월까지 판매한 ELF 규모는 약 1조2000억 원으로 같은 기간 다른 대형 증권사가 1000억 원어치를 파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이 증권사는 ELF가 주식형펀드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했지만 ELF는 한 번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하면 만기 때 기초자산이 떨어진 만큼 손실을 보기 때문에 올해와 같은 폭락장에서는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계열 자산운용사의 펀드를 많이 판 영업사원에게 ‘금 한 돈’ 등 특별 사은품을 제공하는 증권사도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보고서가 주로 장밋빛 전망인 이유는 리서치센터가 결국 영업을 돕는 ‘세일즈 조직’이기 때문.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4일까지 나온 종목 보고서 1만4498건 중 ‘적극 매수’ 또는 ‘매수’ 의견 보고서가 1만2824건(88.45%)인 반면, ‘매도’ 의견은 한 건도 없었다.

고객의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을 증권사로 돌리는 것은 억울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의 전 세계적 증시 폭락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천재지변’에 가깝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지역의 한 증권사 지점장은 “최종 투자 결정은 결국 고객이 하는 것인데 손실이 생기면 증권사만 비난 받는다”며 “지난해 중국 펀드가 많이 팔린 것은 고객이 그만큼 중국 펀드를 찾았다는 뜻이고, 만일 지금 중국 증시가 좋다면 중국 펀드를 추천하지 않은 회사가 비판받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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