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성 강화하며 中企대출 늘리라니”

  • 입력 2008년 11월 8일 03시 01분


■ 은행 실적 악화에 ‘두마리 토끼잡기’ 고민

‘대출 늘리기’와 ‘건전성 관리’ 사이에서 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 등 정부가 은행에 대해 “대외채무 지급보증을 해주는 대가로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건전성 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온 은행들은 그럴 수 없는 형편이다.

여기다 3분기(7∼9월) 실적 집계 결과 전년 동기보다 당기순이익이 50%나 감소하거나 아예 적자를 기록한 은행도 있어 고민은 더욱 크다.

은행들은 중기 대출을 늘리기 위해 가계와 대기업 대출을 줄이려고 고민하고 있다.

○ 금융위 가이드라인에 곤혹

시중은행의 중기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1.10%에서 올해 8월 말 1.59%로 높아졌다. 예대율(예금액 대비 대출액)은 2000년 말 72.6%에서 지난해 말 127%까지 급증했다. 또 전체 기업대출에서 부동산 관련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21.7%에서 지난해 말 23.8%로 높아진 상태다.

그러나 금융위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은행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 및 만기 연장 계획 등을 구체적인 수치로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양해각서(MOU)에서 중기 대출을 늘리라고 압박하면서 건전성을 위해서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유지하라고 하는데 이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라는 것”이라며 “해법은 증자를 통해 적정자기자본을 늘리는 것인데 지금과 같은 증시 상황에서 어느 은행이 증자를 시도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한 임원은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면 은행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외환위기 때 경험했다. ‘그보다는 당국으로부터 싫은 소리 몇 번 듣는 게 낫다’는 게 은행원들의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 부진한 은행 실적

우리금융지주는 3분기 당기순이익이 1570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1.3% 감소했다고 7일 밝혔다. 실적이 악화된 원인으로 우리금융지주는 부채담보부증권(CDO) 손실(2193억 원), 신용부도스와프(CDS) 투자액 평가손실(1985억 원) 등 4000억 원 이상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로 인해 충당금 적립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기업은행의 3분기 당기순이익은 1443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3.7% 감소했다.

이미 실적을 발표한 KB, 신한, 하나금융지주, 외환은행을 포함해 국내 주요 시중은행 6곳의 건전성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7일 외환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정해진 자본으로 얼마나 이익을 내는지 보여 주는 자기자본이익률(ROE·Return On Equity)은 6개 은행 모두 지난해 말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대표적인 은행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6월 말 2.33%에서 올해 6월 말 2.18%로 감소했다. 반면 미래 손실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돈인 대손충당금은 증가세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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