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달 들어서는 경영난이 심해지자 "죽고 싶다"며 괴로워 한 것으로 전해진다. P 씨의 가슴 아픈 사연은 꽁꽁 얼어붙은 지방 경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국은행은 14일 지방 대형소매점 판매액지수 증가율이 1998년 이후 10년 만에 마이너스를 보였다고 밝혔다. 금융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옮겨가면서 지역경제는 지금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
●한파 닥친 몰아닥친 지역경제
광주 광산구 하남공단의 J사는 최근 폐업신고를 했다. 전자부품용 고무를 납품하는 이 업체는 연간 7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건실하게 운영해왔으나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창업 20년 만에 무너졌다.
이 회사 대표는 "원자재 가격이 40% 정도 올랐지만 대기업은 납품 단가를 계속 내려 달라고 해 버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공단에서는 지난달 D산업, P공업이 부도로 쓰러졌고 10여 개 업체가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다음달 GM대우자동차의 일시 가동중단 결정으로 대구지역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초비상이다. 부산 사상구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L사는 공장 가동률이 50%를 밑돌자 최근 직원들을 휴가 보냈다. 인근 W, D사 역시 일부 직원만 남기고 10일짜리 단체 휴가를 갔다. E사는 9월 40명의 직원을 명퇴시킨데 이어 2차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다.
조선 업계에도 한파가 찾아들었다. '부자도시' 울산 경제의 대들보인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월 평균 10척 안팎의 물량을 확보했으나 지난달 이후에는 단 한 척도 수주를 하지 못했다.
조선과 함께 울산지역의 주력업종인 석유화학업계에도 냉기가 감돈다.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는 지난달 27일부터 나프타분해공장의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창사 이후 4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불황의 그늘은 제조업체 뿐 아니다. 충북 청주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표모(38) 씨는 "여행 상담은 거의 끊긴 상태이며 일부 여행사는 감원이나 감봉, 휴가를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청주국제공항에서는 베이징, 상하이, 선양 등 6개 노선을 오갔으나 여행객이 크게 줄어들면서 선양 노선만 남았다.
지역경제에 위기가 닥치면서 부산시가 '경제위기 대응 종합상황실'을 꾸리는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민이다.
●10년 이래 최악
3분기(7~9월) 지방 대형소매점 판매액은 외환위기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이날 내놓은 '최근의 지방경제 동향'에 따르면 3분기 서울을 제외한 지방의 대형 소매점 판매액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감소했다.
판매액지수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1998년 이후 처음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판매액 증가율은 각각 -1.3%, -1.2%로 나타났다. 지방 제조업 생산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 증가하는 데 그쳐 2분기(9.9%)보다 하락했다.
3분기 지방 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같은 2.9%였지만 취업자 증가가 지난해 3분기 21만6000명에서 17만1000명으로 하락해 고용 사정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지방경기는 제조업 생산 증가세가 둔화된 데다 건설 활동의 위축, 서비스업황의 부진이 심화되는 등 모든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