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자본을 확충했지만 피해가 적은 국내 민간은행들은 자력으로 자본 확충에 나선 것이다.
하나금융지주는 18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1조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결의했다. 하나지주의 회사채 발행은 2005년 지주사 출범 이후 처음이다.
하나지주 관계자는 “조달된 돈은 주로 하나은행을 비롯한 계열사 지원에 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는 하나지주가 1조 원 중 최소 5000억 원가량은 하나은행의 유상증자에 사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도 “연내에 1조 원 이내의 회사채 발행을 검토 중”이라며 “우리은행의 자본 확충이 주 용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지주사가 회사채 발행에 나선 것은 자회사 은행의 자산 건전성 하락을 막기 위한 포석.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18개 은행의 9월 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바젤Ⅰ기준)은 10.61%로 6월 말보다 0.94%포인트 떨어졌다. 은행들이 기업 대출 등 자산을 줄이면 BIS 비율이 높아지지만 정부가 ‘비 올 때 우산을 빼앗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어 이마저 쉽지 않다.
결국 국내 은행들은 자기자본에 포함되는 후순위채 발행을 대거 늘려 ‘급한 불’부터 끄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기업은행 등 주요 6개 은행이 올해 발행했거나 발행할 예정인 후순위채 규모는 7조 원에 가까워 지난해(2조9000억 원)의 2배가 넘는다.
하지만 후순위채는 일반 채권보다 금리가 높아 은행의 장기적인 수익성에 악영향을 준다. 또 BIS 비율은 높아지지만 자산 건전성의 핵심지표로 꼽히는 기본자본(Tier-1)비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국내 은행의 기본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8.45%에서 올해 6월 말 8.24%로 떨어졌다.
한 증권사 은행 담당 연구원은 “공적자금 투입이나 일반 주주의 증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지주사의 유상증자가 BIS 비율과 기본자본비율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방식은 지주회사 형태를 갖춘 은행만 쓸 수 있는 해법이다.
지주사들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각각 5000억 원, 6000억 원 규모의 증자를 하면 현재 7%대로 떨어진 기본자본비율이 8%대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도 “선진국 은행들은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기본자본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국내 은행들의 기본자본비율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상대적인 불이익이 우려된다”며 “국내 은행권도 자본 확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본 확충 바람은 보험사에도 번지고 있다.
ING생명은 다음 달까지 3500억 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해 보험사의 건전성 기준인 지급여력비율을 150%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그린손해보험과 미래에셋생명은 올해 안에 유상 증자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도 회사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은행들에 비해 기본자본비율이 높은 편이어서 증자를 위한 용도로 자금을 쓰지는 않을 방침이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은행 자기자본
자본금, 이익잉여금 등 기본자본(Tier-1)과 후순위채, 대손충당금 등 보완자본(Tier-2)으로 나뉜다. 기본자본이 많으면 대손충당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