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시선 사로잡아
국내업체도 전략 수정
제품구성 등 변화 시도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엠플라자. 옛 유투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올해 9월 다시 문을 연 이 쇼핑몰은 길 건너 한가한 백화점 매장과 달리 20, 30대 젊은 고객들로 붐볐다. 이들이 반드시 들르는 매장은 각각 스페인과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브랜드 ‘자라’와 ‘포에버21’. 이곳에서 만난 신현정(27·여) 씨는 “품질이 좋은데도 값이 싸 퇴근길에 습관처럼 들러 니트나 티셔츠를 색상별로 사게 된다”고 말했다.》
○ 글로벌 패스트 패션의 공세
패스트 패션은 말 그대로 최대한 빠르게 소비자의 욕망을 제품에 반영한 기성복을 이르는 말이다. 이름만큼이나 빠르게 국내에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국내 진출 7개월 만에 매장을 5곳이나 낸 자라가 대표적. 자라는 올해 4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영플라자에 첫 매장을 낸 이후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명동 엠플라자, 롯데 건대스타시티점에 이어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삼성플라자 근처에 1100m² 규모로 매장을 열었다.
자라리테일코리아 관계자는 “아직 한국에서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내년에도 매장을 계속 열 것”이라고 말했다.
재미(在美)교포 사업가가 운영하는 포에버21은 동대문 의류만큼 싼 값과 매일매일 나오는 ‘신상’으로 브랜드 론칭 1개월 만에 국내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브랜드의 티셔츠는 7000∼8000원 선, 재킷은 2만∼3만 원, 청바지는 2만 원 안팎이면 살 수 있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도 내년 서울 중구 명동의 눈스퀘어(옛 아바타몰)나 영등포구 영등포동 옛 경방 방직공장 자리에 들어설 타임스퀘어 입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정연우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패션업계가 유통 경쟁력을 갖춘 해외 대형 SPA(생산부터 소매유통까지 직접 맡는 회사) 브랜드와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 흔들리는 국내 패션업계
글로벌 SPA 브랜드의 전방위 공세와 달리 국내 패션업계는 옷 종류를 불문하고 중소형 회사를 중심으로 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올 하반기(7∼12월) 들어 트래드클럽, 마리끌레르, 이지엔느 등 30대 여성복 브랜드로 알려진 패션네트를 비롯해 디자이너 브랜드인 원재패션 등 많은 장수 브랜드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한 백화점 상품기획자(MD)는 “언제 브랜드가 부도날지 몰라 매장 개편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국내 의류회사들도 글로벌 브랜드에 맞설 토종 패스트 패션 브랜드 키우기에 주력하고 있다. FnC코오롱이 2001년 국내 첫 SPA 브랜드로 론칭한 여성 캐주얼 브랜드 ‘쿠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쿠아는 당초 10대 후반∼20대 초반 여성 고객을 겨냥했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구매력이 높은 20대 초반∼30대 초반으로 타깃 연령층을 높였다. 제품 구성도 상하의 한 벌보다는 셔츠, 바지, 재킷 등 단품 위주로 바꿨다.
양문영 FnC코오롱 과장은 “이른바 ‘신상’도 1년에 4번 내놓는 시즌 상품이 아니라 매주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소비자의 빠른 취향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며 “이 같은 노력으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5% 늘어날 정도로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