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코리아 펀드.’
1999년 당시 현대투신운용이 ‘저평가된 한국 기업을 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3개월 만에 약 12조 원의 투자자금을 모은 펀드 시리즈 이름이다. 이 펀드는 이듬해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수익률이 급락했고 투자자금도 줄줄이 빠져나갔다.
여기까지 기억하는 투자자들은 이 펀드를 ‘망한 펀드’로 기억한다. 그러나 바이코리아 펀드 시리즈 가운데 일부는 2003년 현대투신이 푸르덴셜그룹에 인수되며 펀드 이름과 운용 시스템이 바뀐 뒤 아직까지 건재하다. 》
IT거품-카드채 사태 등 산전수전 다 겪고 생존
10년 수익 269% 낸 것도… 운용사 시스템 중요
전문가 “테마펀드보다 일반형 펀드가 안정적”
최근 증시 급락으로 ‘과연 펀드 수익률이 회복될지’ 불안해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국내에는 IT 거품 붕괴, 9·11테러, 카드채 사태 등 산전수전 다 겪고도 살아남아 ‘장기투자의 힘’을 보여준 장수펀드들이 있다.
바이코리아 펀드 중 하나였던 ‘푸르덴셜 나폴레옹 정통 액티브주식1’의 설정 이후 수익률은 14일 기준으로 198%. 설정일인 1999년 3월 6일 이후 코스피가 약 100% 오른 점과 비교하면 시장 대비 약 100%포인트의 추가 수익을 올린 셈이다.
푸르덴셜투신운용 송이진 주식운용본부장은 “이 펀드는 가치형펀드와 성장형펀드의 성격이 섞인 혼합형으로 시장의 흐름에 맞게 운용되고 있다”며 “2003년부터 팀 단위로 운용돼 펀드매니저 한 명이 바뀌어도 운용에 큰 무리가 없다”고 장수의 비결을 설명했다.
1999년 4월 바이코리아 펀드 4종류에 퇴직금 2억 원을 거치식으로 넣었던 공무원 출신인 박모(75) 씨는 “펀드 수익이 1년 만에 ―50%까지 떨어져 펀드를 추천한 사위와 갈등도 생겼었다”며 “그런데 2003년이 되니 어떤 펀드는 누적 수익률이 100%까지 회복돼 기쁜 마음으로 투자금을 되찾았다”고 회상했다.
1999년 1월 설정된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의 ‘프랭클린템플턴그로스 주식형펀드5’는 14일 기준 누적 수익률이 269.88%이다. 이 펀드도 IT 거품 붕괴로 2000년에서 2001년 사이 설정액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드는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2005년 상승장에 힘입어 다시 인기를 끌었다.
프랭클린템플턴 김태홍 펀드매니저는 “펀드가 오래 운용되려면 자산운용사의 시스템이 잘 구축돼 매니저가 바뀌어도 무리가 없고, 섹터별로 애널리스트가 다 갖춰져 리서치 기반도 튼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의 적극적인 마케팅도 중요하다. 1970년에 설정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펀드인 하나UBS자산운용의 ‘하나UBS안정성장1월호’는 한때 설정액이 급감해 운용이 거의 중단됐다가 2005년 마케팅 차원에서 부활해 현재 300억 원 규모로 늘어났다.
펀드매니저들은 IT주 등 당시 인기를 끄는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테마펀드보다 일반 성장형펀드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린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펀드에 무조건 오래 투자한다고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2000년 이전에 설정된 장수펀드 51개 가운데 설정일 이후 누적 수익률이 최근 5년 수익률보다 낮은 펀드도 10개에 이른다. 중간에 대량 환매 등으로 펀드 운용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