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설회사들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이들이 지급보증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하기로 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려 온 건설사들은 일단 급한 숨을 돌리게 됐다.
▶본보 19일자 A1면 참조
ABCP는 만기가 짧은 데다 최근 부동산 경기침체로 재무 건전성이 나빠진 건설사들이 지급보증을 하고 있어, 부동산 금융 분야에서는 위기를 불러올 ‘뇌관’ 중의 하나로 꼽혀 왔다.
○ 신규 발행 급감, 만기 연장도 어려워
부동산개발 시행업체가 건설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B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
둘 다 향후 벌어들일 부동산 개발이익을 담보로 하며 시공사(건설사)가 지급보증을 한다. 은행들이 PF 대출로 손쉽게 이득을 본 것처럼 증권사들은 앞 다퉈 ABCP 발행 주간사회사를 맡으며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
건설 경기가 호황일 때 이 시스템은 무리 없이 작동했다. 시행사가 부동산 개발에서 생기는 수익으로 대출 및 어음 상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금융시장에서는 ABCP의 신규 발행은 물론이고 만기 연장도 힘든 상황이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부동산 관련 ABCP 발행액은 4269억 원으로 9월(7706억 원)보다 크게 감소했다. 또 투자자들의 상환 압력이 거세지면서 지급보증을 한 건설사들에도 불똥이 튀었다. 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ABCP는 단기로 돈이 필요할 때 건설사들이 주요 이용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만기 연장이 거의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9월 말 ABCP 지급 보증액은 일부 대형 건설업체의 경우 1조 원을 넘는다. 금융위원회는 ‘BBB+’급의 우량 건설업체가 지급 보증한 ABCP를 사주는 방안과 함께 ‘BBB―’급 중견 건설회사의 ABCP도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을 통해 등급을 끌어올려 매입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 “더 구체적인 지원방안 필요”
ABCP의 위험성은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거론이 됐지만 이내 다른 이슈들에 묻혔다. 부동산 금융부문에선 그보다는 PF 대출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인식됐다.
그 사이 지급보증을 맡은 건설사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발행금리가 치솟았고 어음을 매입한 개인투자자들의 위험도는 더 커졌다.
건설업계는 정부의 ABCP 매입 방침에 대해 대체로 환영했지만 “더 구체적이고 추가적인 지원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요즘 건설업계에서 ABCP는 PF 대출보다 더 큰 문제”라며 “대책은 옳은 방향이지만 10조 원 규모의 채권안정기금으로 충분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 지원과 별도로 최근 가동되고 있는 건설사 대주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