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는 대규모 손실에 울고 한국 경제와 은행은 해외투자펀드의 환헤지에 따른 단기외채의 급등으로 해외 시장의 불신까지 받고 있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기 직전에 해외투자를 장려한 정부의 판단 착오와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투자 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던 금융권에 '복수의 칼날'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해외투자펀드의 복수
21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해외투자 펀드 설정액은 올해 10월 말 현재 77조 원으로 2005년 말(9조)보다 68조 원이 늘었다. 지난해 한해에만 54조 원이 급등했다.
단기간에 해외펀드가 급증하면서 은행의 단기외채도 급증했다. 해외투자펀드 운용사들이 원화 강세로 달러로 벌어들인 수익의 원화 환산금액이 줄어들 것으로 대비해 달러를 미리 파는 '환 헤지'를 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해외펀드 중 약 81%, 역외펀드의 58% 정도가 환헤지를 했다.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한 외국인의 '환 헤지' 비율은 10% 수준이다.
해외펀드 운용사와 선물환 매입 계약을 한 은행은 나중에 달러가 들어올 것으로 대비해 그만큼의 달러를 해외에서 차입해 현물환 시장에 팔게 된다. 환율은 더 떨어지고 은행의 단기 외채는 더 늘게 된다.
올해 6월말 현재 대외채무(4198억 달러)의 36%에 해당하는 1518억 달러가 조선업체와 해외투자펀드의 선물환 매도에 따른 외채다. 금융시장에서는 이 중 500억 달러 정도가 해외투자펀드의 환헤지 물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업체가 선박대금을 받거나 해외투자펀드 만기가 돌아오면 달러가 들어오니까 '상환 부담이 없는 외채'라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해외 투자자들은 단기간 급증한 외채를 불안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도 '최악의 해'를 보내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금융위기로 해외 주가가 폭락하면서 14일 기준 해외 주식형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49.04%로 원금이 거의 반 토막 난 상황이다.
평가 손실이 늘면 이번에는 미리 팔아 놓은 '환 헤지' 규모를 줄여야 한다. 해외 증시가 폭락할 때마다 지난해와 정반대로 '달러 사자' 주문이 나오게 되는 것. 최근 환율 상승의 주범으로 외국인 주식 순매도와 투신권의 해외펀드 관련 환헤지 조정 물량이 꼽힌다.
●정부와 금융기관 합작품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크게 늘고 환율이 하락하자 해외투자를 장려했다. 지난해 해외투자펀드에 대한 세제 혜택도 줬다. 경상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되기 직전 해외투자 장려에 나선 것이 결국 '독'이 된 것.
은행은 앉아서 돈 벌 수 있는 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다. 이 결과 주식시장으로 은행 예금이 빠져나가는 '머니 무브'가 더 빨라지고 은행의 자금조달 구조가 왜곡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은행들은 펀드 판매수수료로 지난해 1조6824억 원, 올해 상반기(1~6월) 8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은행 당기순이익의 11.3%가 펀드판매수수료다. 예금이 빠져나간 자리는 조달 비용이 비싼 양도성예금증서(CD)나 은행채 등 시장성수신으로 메꿨다. 은행의 자금조달 수단 중 시장성수신 비중은 2005년 말 23.2%에서 2008년 8월 말 32.7%로 급등했다. 최근 금융시장이 얼어붙자 시장성 수신 의존도가 높은 은행들은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윤인구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현재로서는 해외 증시가 살아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변동성이 큰 주식시장에 투자하면서 '환 헤지'를 하는 관행이 옳은지 돌아보고 투자자들이 직접 '환 헤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