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소진 우려 미세조정만 나서
유가 떨어져 환율 올라도 물가불안 덜해
무역흑자 유도해 외환시장 안정화 기대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연일 출렁이고 있지만 정부의 환율 개입은 보이지 않는다. 환율이 급등락할 경우 미세조정에 그칠 뿐 ‘환율 수준’에 대한 개입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중 1525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다시 1500원 밑으로 떨어지며 1495.0원으로 마감한 것도 정부의 것으로 추정되는 5억 달러가량의 팔자 주문보다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주식 매수세로 돌아선 영향이 컸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도 “지금은 환율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며 개입 자제 방침을 밝히고 있다.》
○ 환율 왜 여전히 출렁이나
정부는 9월 15일(현지 시간) 미국계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의 부도로 금융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지자 전방위 대책을 쏟아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연말까지 금융시장과 기업 지원에 쏟아 붓기로 한 원화와 달러는 총 133조 원. 한은은 또 최근 한 달간 금리를 1.25%포인트나 내렸다. 이 때문에 정부 외환보유액은 10월 말 현재 2122억5000만 달러로 한 달 전보다 274억2000만 달러 줄었다.
그런데도 환율의 오름세는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이후 1400원대에서 1200원대로 일시 하락했던 환율은 최근 다시 1400원대 후반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환율이 계속 오르는 이유는 외국인들이 신흥시장에 대한 주식, 채권 투자자금을 회수하면서 달러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환은행 김두현 차장은 “외국인 주식매도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라며 “하루아침에 달라질 상황이 아니어서 당분간 환율이 하락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 달라진 정부의 환율 대응
그런데도 정부는 외환시장을 사실상 관찰만 하고 있다. 지금 상태에서는 ‘백약이 무효’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는 와중에 환율시장에 개입해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어서 외환보유액만 낭비할 뿐이라는 것. 이날 5억 달러를 투입한 것도 지나친 급등락을 완화하는 게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운용 환경이 달라진 것도 정부 대응방식 변화의 큰 원인 중 하나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던 7월에는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불안을 진화하는 게 발등의 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50달러를 밑돌아 물가 부담을 덜었다.
반면 글로벌 금융 불안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외화 지불능력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게 훨씬 중요한 정책목표로 떠올랐다.
환율 상승에 따른 경상수지 개선 효과도 정부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대목이다. 단기적으로는 무역수지 흑자가 외환시장의 심리적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는 10월 이후 외환보유액을 시장에 공급할 경우에도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기보다는 외화유동성이 부족한 시중은행에 달러를 직접 빌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 시장 평가는 긍정적
이날 한 외환딜러는 “달러화 수요가 잔뜩 몰리는 상황에서 당국의 적극적 시장 개입이 없으면 환율 상승폭은 계속 커질 것”이라며 외환시장 상황을 우려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제 전문가는 환율이 기업경영 등 경제활동을 어렵게 할 정도로 급등락할 경우에만 ‘스무딩 오퍼레이션’ 차원에서 개입하고, ‘환율 수준’에 대한 개입은 자제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 교수는 “환율을 인위적으로 움직일 경우 항상 부작용을 초래한다. 외국인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가 과도한 가계부채,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금융부실 가능성 때문인 만큼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추가로 내놔 시장의 불안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현재 환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는 만큼 느리지만 서서히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