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1조5000억 중 9200억은 이미 대손충당금 쌓아
연체율 계속 높아져… “부동산값 하락땐 부실확대 우려”
23일 정부가 집계한 상호저축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부실 규모 1조5000억 원은 시장의 예상보다 작은 규모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PF대출과 관련한 시장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제거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 PF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는 추세이고 저축은행이 담보로 잡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부실이 확대될 수도 있어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시장이 조사 결과를 얼마나 믿느냐는 다른 문제로 남는다. 비록 저축은행의 자체조사보다는 부실집계액이 1.6배로 커졌지만 시장의 예상과 차이가 크고 정부 신뢰도 확고하지 않은 상태여서 ‘조사결과가 실제보다 축소됐을지 모른다’고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
![]() ![]() |
○저축은행 PF대출 위험수준 드러나
정부가 저축은행 PF대출 사업장에 대해 직접 전수(全數) 조사를 벌인 것은 ‘저축은행발(發) 금융위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매우 커 정확한 실태파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10월 중 899개 전체 PF사업장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여 사업장들을 상(정상) 중(주의) 하(악화 우려) 등 3등급으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 저축은행의 PF대출 12조2000억 원 중 12%인 1조5000억 원 정도만 부실화된 것으로 나타나자 금융당국은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정부 당국 관계자는 “금융권 전체에 큰 충격을 줄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악화 우려’ 대출도 저축은행들이 대부분 건설 시행사의 땅, 아파트 등을 담보로 잡고 있어 1조5000억 원 모두 부실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중 9200억 원은 이미 대손충당금을 쌓았기 때문에 추가로 필요한 충당금은 5800억 원 정도.
물론 이들 사업장의 부실이 현실화되면 시행사의 부도가 이어지고 지급보증을 선 건설업체도 자금난에 몰리면서 건설업계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 속도 낼 듯
위험의 윤곽이 드러남에 따라 금융당국은 처방을 할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은 우선 악화우려 사업장에 대출한 저축은행들에 추가 대손충당금을 쌓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도록 감독할 방침이다. 다만 개별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보는 시장에서 저축은행과 건설업체의 ‘살생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와 함께 업계 내의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자율 구조조정이 활성화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이미 현대스위스저축은행, 부산저축은행, 토마토저축은행 등은 고려저축은행, 대전저축은행, 충북저축은행, 양풍저축은행 등을 각각 인수했거나 인수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부실 우려가 큰 사업장에 대출한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등에 돈이 묶여 유동성이 떨어지고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할 수 있어 대주주의 출자나 M&A 등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한 부실 PF사업 인수 방안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줄었다. 통상 캠코는 부실이 심한 사업에 ‘헐값처리’ 방식으로 개입하지만 저축은행들이 상당한 담보를 잡고 있어 가격조건 등이 맞을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권 PF대출 부실 우려는 남아
저축은행 PF대출의 현황이 드러나면서 금융당국의 관심은 은행권 PF대출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은행권의 부동산 PF대출 규모는 올해 6월 말 기준 47조9000억 원으로 총여신(900조5678억)의 4.4%다. 2006년 말 25조9000억 원에서 2년여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것. 은행권의 건설·부동산 관련 대출액은 133조2059억 원으로 총여신의 14.79%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총여신 대비 PF대출 비중이 낮고 연체율도 0.68%(6월 말 기준)로 높지 않아 건전성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건설경기 침체가 심화돼 시행사, 시공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은행권도 충격을 피할 수는 없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