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재정부 ‘종부세 의견’ 두 달 만에 180도 뒤집었다

  • 입력 2008년 11월 24일 03시 01분


8월 “종부세 합헌” → 10월 “대폭 손봐야”

《기획재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위헌 심판청구소송과 관련해 8월과 10월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의 내용이 전혀 달라 논란이 일고 있다. 관료의 속성에 비춰볼 때 정권이 바뀌면 공무원들이 어느 정도 눈치를 보게 마련이지만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23일 재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낸 헌재 제출 의견서에 따르면 재정부는 8월 25일에는 종부세가 합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달 뒤인 10월 22일에는 종부세를 대폭 손봐야 한다고 태도를 180도 바꿨다. 이 과정에서 두 의견서는 동일 쟁점에 대해 어떤 게 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다른 근거를 내놓았다.》

원본 잠식? “최고세율로 52년” → “20년이면 바닥나”

세액과다? “대부분 부담낮아” → “선진국보다 높아”

징벌성격? “국민주거권 확보” → “보편성원칙 위배”

“갈대같은 관료 현실 반영한 것” 지적도

▽원본 잠식 논란=재정부는 8월 의견서에서 “원본의 침해 없이 소득만 과세하는 세금이란 있을 수 없다”며 “집값의 원본을 모두 잠식하기 위해서는 최고세율 3%를 적용해도 52.1년이나 걸린다”고 밝혔다.

반면 10월 의견서에서는 “종부세를 20년 이상 과세하면 재산의 원본을 모두 잠식하는 과도한 세금 부담 수준이라는 게 학자들의 견해”라며 기존의 주장을 뒤집었다.

▽과도한 세율=8월 의견서에서는 “2007년 종부세 대상자의 주택분 보유세 평균 실효세율이 0.53%로 외국에 비해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가 매년 집값을 평가하는 한국과 외국의 부동산 평가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10월 의견서에서는 국가 간 세율 비교는 실효세율이 아니라 명목세율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기준 자체를 바꿨다. 명목 최고세율은 주택이 3.6%, 나대지는 4.8%에 이르기 때문에 1∼2%대인 외국과 비교하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세액 과다=8월에는 2007년 주택분 종부세 납부자 중 100만 원 이하가 37.4%, 300만 원 이하는 68.7%에 이른다는 점을 들어 세금 부담이 결코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0월에는 다양한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재정부는 “2007년 총조세 대비 재산 과세 비중은 12.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6%보다 현격히 높다”고 설명했다. 또 “종부세 부담자의 총소득 대비 보유세 부담률이 서울의 경우 7∼8% 수준으로 뉴욕(5.5%)과 도쿄(5%)보다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재정부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미국의 40% 수준임을 고려하면 체감 세금 부담은 선진국보다 높다”고 밝혔다.

▽종부세의 징벌성=재정부는 8월에는 “종부세가 불필요한 부동산 보유를 억제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국민 다수에게 쾌적한 주거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10월 의견서에선 “종부세는 2%의 납세자에 대해서만 과도한 세금 부담을 지운다”고 비판했다. 재산세는 일정 규모의 재산을 갖고 있는 모든 국민에게 부과하지만 종부세는 특정 계층에만 과세하기 때문에 보편성의 원리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거주이전 자유 및 지방자치단체 권한 침해=재정부는 종부세 부담으로 기존 주택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8월 의견서에서는 “재산권에 대한 제한이 수반하는 반사적 불이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10월에는 “소득이 적은 연금 생활자나 고령자는 종부세 부담이 과도해 주거생활의 안정을 저해한다”고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종부세가 재산세처럼 지방세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중앙정부가 국세로 걷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상반된 해명을 내놨다.

8월에는 “수도권 집값이 오른 것은 1960, 70년대 중앙정부가 개발정책을 추진하면서 수도권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재원을 배분했기 때문”이라며 국세 징수의 정당성을 설명했다가 10월에는 “(종부세 등) 보유세는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 대가이기 때문에 지방세로 걷는 게 바람직하다”고 상반된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 당국자는 “종부세와 관련한 정부 견해가 9월 23일에야 확정됐기 때문에 헌재의 요구로 낸 8월 의견서는 종전 방침대로 합헌에 무게를 둬야 했지만 10월에는 개편의 당위성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옛 재정경제부 간부 중 상당수는 사석에서 종부세의 부당성을 강조했지만 윗선에 올리는 보고서는 청와대 구미에 맞춰 작성했다”며 “갈대와 같은 관료들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떨떠름하다”고 꼬집었다.

한국조세연구원 노영훈 선임연구위원은 “종부세를 처음 만들 때 옛 재정경제부에서는 반대 목소리를 낼 간부들은 회의 단계에서부터 배제했다는 말도 많았다”며 “이처럼 정치적 의도에 맞춰 정책을 짜내다 보니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급변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영상취재: 임광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영상취재: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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