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위축 → 실업증가 → 소비감소 → 물가하락 악순환
각국 정부 금리 크게 내려 인위적인 경기부양 나서
디플레이션(Deflation)은 경기 침체기에 장기적으로 물가 하락이 이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보통 물가가 떨어지면 음식 값, 자동차 값 등이 낮아져 개인의 생활도 풍요로워지고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경기침체와 함께 오는 물가하락은 경제에 오랫동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이를 해결할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얼마 전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디플레이션은 막겠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점을 우려한 것입니다.
1990년대 10년간 이어진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도 바로 디플레이션에 있었습니다.
그럼 디플레이션이 어떻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까요.
소비자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줄이는 경기 침체기에 물가가 떨어지면,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버는 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새로 사람을 고용하거나 투자를 늘리지 못합니다. 이는 다시 실업률 증가,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시장에서 돈이 돌지 않아 기업경영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디플레이션은 한 번 시작되면 대응책을 마련하기 힘들고,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어지기 때문에 ‘디플레이션 악순환(Deflation Spiral)’이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일본의 장기침체는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1980년대에 일본 정부는 금융자유화 조치를 발표했고, 이로 인해 외국자본의 일본 유입이 활발해졌습니다. 일본으로 돈이 들어오니 주가도 오르고 부동산 가격도 상승했죠.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 물가가 불안해지자 1980년대 말 일본 정부는 금리를 크게 올렸고, 돈을 빌리는 비용이 높아지자 일본 증시와 부동산 가격의 거품(버블)이 붕괴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이 떨어지면서 개인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도산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여러 정책을 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장기간 불황이 이어진 것입니다.
디플레이션은 보통 부동산, 주식과 같은 자산 가격의 하락에서 시작됩니다.
10억 원짜리 집을 보유한 사람은 현금은 많지 않더라도 “난 부자야”라고 생각해 소비를 늘립니다. 그러나 이 집값이 5억 원으로 떨어지면 심리적으로 위축돼 지갑을 닫게 되고 이런 사람이 많으면 수요가 줄어 물가는 떨어지게 됩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갖고 있던 주식의 평가액이 10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반 토막 나면 개인은 재산이 줄었다는 생각에 소비를 줄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는 디플레이션의 초기 현상인 자산가격 하락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수 의견이지만 일부에서는 “이미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미국의 경우 10월 소비자물가는 9월보다 1% 내렸습니다. ‘1%’는 작은 숫자로 보이지만 1947년 미국이 소비자물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큰 하락폭입니다.
다만 1929년 시작됐던 대공황이 끝난 후 미국에서 디플레이션으로 정의되는 현상이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실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지금 각국 정부는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부터 기준금리를 세 차례에 걸쳐 1.25%포인트 내려 4.0%까지 낮췄고, 미국도 공격적인 금리 인하로 정책금리를 1.0%로 내렸습니다.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영국 정부는 연말 이전에 120억∼180억 파운드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각국 정부의 노력이 세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경기를 부양시켜 디플레이션을 막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봅시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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