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억 이상 체납자 800명 명단 공개
《2006년까지 건설회사 사장이었던 김모 씨는 10억 원에 이르는 종합소득세를 수년째 내지 않고 있다. 국세청에 포착된 김 씨 소유의 재산은 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공시지가 8억3600만 원짜리 땅. 2006년 6월 이 토지를 압류했지만 이에 앞서 김 씨가 다른 사람에게 부동산을 팔기로 ‘매매예약’을 하고 가등기까지 마친 상태였다. 소유권이 넘어갈 예정인 부동산을 공매에 부칠 수는 없어 압류의 실익이 없어진 것. 국세청은 재산을 은닉하려는 허위 계약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입증하기가 만만치 않다.》
국세청은 26일 체납액이 10억 원을 넘는 800명의 명단을 국세청 홈페이지(www.nts.go.kr)와 관보에 공개했다. 이들이 체납한 세금은 총 3조5000억 원, 1인당 44억 원꼴이다.
대부분의 고액 체납자는 상습적으로 재산을 은닉한다. 김 씨의 경우 31년 전인 1977년에도 매매예약 가등기 방식으로 세금을 떼먹은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매매예약 후 10년 내에 본등기를 하지 않으면 가등기가 소멸된다는 판례를 근거로 국세청이 소송을 제기해 결과가 주목된다.
부동산을 타인 명의로 위장 등기하는 고전적 수법도 여전했다.
토지를 쪼개 파는 기획부동산업체 A사는 2005년부터 매출액을 줄여 신고하는 수법으로 법인세 10억5400만 원을 탈루했다. 국세청이 지난해 중반 이를 포착하고 회사 소유 부동산을 압류하려 했지만 이미 A사에는 부동산이 한 필지도 없었다.
회사가 종업원 김모 씨와 다른 종업원의 동서인 서모 씨에게 명의를 옮겨버렸기 때문. 국세청은 이를 허위계약이라고 보고 부동산을 가압류하기로 했다.
탈세를 위한 위장 등기가 부동산뿐 아니라 주식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정모 씨는 부동산 투기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은 결과 120억 원의 종합소득세 체납 사실이 드러났다.
정 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건설업체 주식 1만5000주를 처형 명의로 돌려놓았다. 부동산 투기 혐의자여서 부동산을 찾는 데 주력했던 세무당국으로선 예상치 못한 주식 은닉에 혀를 내둘렀다.
허장욱 국세청 납세지원국장은 “지방청 체납추적전담팀을 통해 체납자의 일상생활을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은닉재산을 추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0억 원 이상 고액 체납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04년에는 대상이 1101명, 2005년에는 1160명에 이르렀다. 이후 2006년 704명, 2007년 661명 등으로 감소하다가 올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