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조치 3주…다시 살아나는 다운계약서

  • 입력 2008년 11월 27일 20시 52분


내년 초 결혼을 앞둔 회사원 송모(29) 씨. 최근 입주를 앞둔 아파트 분양권을 사려고 서울 은평구의 한 중개업소를 찾았다가 "다운계약서를 쓰자"는 말을 들었다. 분양권 값을 1000만 원 깎아줄 테니 계약서에 쓰는 거래가격을 실제보다 낮게 적자는 제안.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를 뺀 수도권 전 지역이 이달 7일부터 투기과열지구에서 풀렸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권을 자유롭게 팔 수 있게 된지 20일 째인 27일. 취재기자가 현장에서 점검을 해본 결과 분양권 거래는 이뤄지고 있지만 불법인 다운계약서 매매관행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웃돈(프리미엄)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매도자들은 양도세라도 줄여 이득을 보려고 하고 자금 여유가 없는 매수자들은 좀 더 싸게 사려하기 때문에 다운 계약서를 쓰는 관행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실거래가 신고 사각지대

송 씨가 소개받은 매물은 5억5000만 원에 분양된 136㎡(41평)짜리 아파트 분양권. 다음달 입주 예정으로, 인기가 높아 분양권 소유자는 6억5000만 원을 받고 싶어 했다. 웃돈이 1억 원이고 보유기간이 1년 미만이어서 이 가격에 팔 경우 소유자는 웃돈 1억 원에 대한 양도세로 약 5000만 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6억 원에 거래한 것으로 거짓 계약서를 쓰면 양도차익이 5000만 원으로 줄어 양도세도 2500만 원으로 감소한다.

송 씨에게 다운계약서를 권한 은평뉴타운의 D중개업소 사장은 "어차피 1주택자 비과세 요건이 9억 원으로 상향 조정돼 송씨가 실거주할 1주택자라면 나중에 양도세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운계약서를 쓰면 매수자는 나중에 되팔 때 양도차익이 커져 양도세가 늘어나지만 3년 보유, 2년 거주요건을 채우면 양도세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라는 것.

또 다른 중개업소 사장은 "조합원 매물은 대부분 매도자의 양도세를 매수자가 대신 내주는 경우가 많아 매수자 입장에서도 다운계약서를 쓰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다운계약서는 요즘 '필수'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9월 분양을 마친 서울의 한 오피스텔은 현재 프리미엄이 200만~500만 원선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매도자들은 거래가 그대로 신고할 경우 양도세를 내고나면 남는 게 없어 안 파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인근 I중개업소 김모 사장은 "분양가 가격으로 거래했다는 다운계약서를 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조건이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등기 전매도 등장

11월 현재 은평뉴타운 조합원 물량은 등기 후 한 번만 팔 수 있다. 하지만 이 일대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번 대책이 발표되기 전부터 대부분 가계약서를 미리 작성해 놓고 입주 후 명의를 바꾸는 미등기 전매 사례가 많았다.

한 중개업소 사장은 "미등기 전매 방식으로 지난달까지 조합원 물량 대부분이 사실상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라고 귀띔했다.

분양권은 공시된 가격이 없어 프리미엄을 낮춰 신고해도 현실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실제 9월 8일 은평구청 지적과는 은평뉴타운 1지구 조합원 물량 거래분 62건 중 과도하게 싼 가격에 신고 된 11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허의 신고 혐의가 판명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지적과 담당 공무원은 "대부분 분양 대금을 못 낼 형편이라 친척이나 과거 채무자에게 시세보다 싸게 넘겼다는 소명 자료를 제출했다"며 "당사자의 소명이 있고 은행거래내역이 있다면 거래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조사를 벌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중계약서가 국세청에 적발되면 양도인은 과태료 외에도 덜 낸 세금의 40%에 해당하는 신고불성실가산세와 그동안 안 낸 세금에 대한 이자를 날짜로 계산한 납부불성실가산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동의대 재무부동산학과 강정규 교수는 "일반 아파트처럼 분양권 프리미엄도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가격 공시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다운계약서를 쓰는 관행을 근절하려면 분양권 취득가격에 상관없이 분양가를 기준으로 취등록세를 매기는 현행법을 개정해서 분양가 취득가격을 기준으로 취등록세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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