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없는 연말, 10년만에 처음”

  • 입력 2008년 11월 30일 20시 55분


‘달력 특수’ 사라진 서울 충무로-성수동 인쇄골목

기업 판촉물 주문 급감… 곳곳 휴업

“어렵지만 희망의 끈 놓지 말아야죠”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을지로 입구로 이어지는 200m 남짓한 거리와 그 사이사이 골목에는 600여개의 인쇄소들이 밀집해 있다. 하지만 최근 찾은 이 곳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최근 몇 년간도 그리 경기가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특히 올해는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새해 달력과 수첩, 각종 판촉물 등을 싣기 위한 차량과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새해 달력과 각종 판촉물 주문이 크게 줄면서 서울 충무로, 을지로 등의 '인쇄거리' 풍경도 달라졌다. 연말 특수(特需)는커녕 기계를 돌릴 일감이 없어 문을 닫아 놓은 곳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4명이던 직원을 한 명만 남기로 다 내보냈습니다. 지금은 제가 직접 기계를 돌이고 있지만 별로 바쁘지 않네요"

을지로에서 30년 넘게 인쇄소 직원으로 일하다 10년 전 어렵게 인쇄업체를 차린 S인쇄소 A 사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올해는 문을 닫은 업체들이 적지 않았고, 그나마 문은 연 곳도 일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S인쇄소도 한 대 뿐인 기계가 이날은 그냥 멈춰 서 있었다. 골목 전봇대 등에는 가게를 내놓는다는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주문 감소 뿐 아니라 가파르게 상승한 원자재 가격도 이들 업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나마 A 씨처럼 인쇄소에서 일해 본 경험이 많은 업체 사장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직원 2~3명을 데리고 단순히 운영만 해 온 사장들은 직원들을 내보내지도 못해 쌓이는 적자로 좌불안석이다. K인쇄소 B사장은 "(내가) 기계도 못 돌리는데 직원을 모두 내보냈다가 주문이 오면 어떻게 하겠나"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요즘 오후 7시면 문을 닫는다. 인쇄소 사장들은 "매일 자정까지 야근은 기본이었고 2교대로 24시간 기계를 가동하던 작년이 꿈만 같다"고 했다.

판촉용 수첩을 주로 생산하는 O인쇄소 사장 B씨는 "100~200권씩 주문하던 중소기업의 소량 주문은 아예 끊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공장 형태의 인쇄업체 100여 곳이 모여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형 인쇄기가 6대나 되는 M인쇄사(社)의 창고는 창고가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물건이 쌓인 공간은 창고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창고 옆에서 쉬고 있던 이 회사 관계자는 "전체 직원 30여 명 가운데 10명 넘게 회사를 떠났다"며 "10년 동안 11월에 야근을 하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다른 걸 한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인쇄거리'에서 만난 상당수 인쇄업체 사장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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