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로 '닥터 둠(Dr.Doom)'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투자전문가 마크 파버 씨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하나금융그룹 출범 3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또 하나의 우울한 시나리오를 내놨다. 그의 전망은 2010년경이면 세계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월드뱅크, IMF 등 제도권 기관의 예측과는 크게 달라서 일단 눈길을 끈다.
파버 씨는 1987년 미국의 '블랙 먼데이'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정확히 예언해 '닥터 둠(우울한 미래)'이란 별명을 얻었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마크파버 리미티드' 투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고 있다.
2001년말 닷컴버불이 끝난 뒤 오일 등 상품가격이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전 세계의 자산가격이 빠지면서 디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다"며 "통화 확장 정책은 현 상황에 대한 잘못된 처방으로 자산가격 하락이라는 근본 원인을 제거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파버는 현재의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금융회사들보다 앨런 그린스펀전 FRB의장을 꼽았다.
그는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은 지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된 통화확장정책"이라며 "이로 인해 부동산과 원자재 가격, 신흥국 주가, 골동품 가격까지 모든 자산에 걸쳐 거품(버블)이 끼게 됐다"고 지적했다.
유망 투자상품과 관련 그는 "주식 투자보다는 금을 비롯한 원자재 투자가 유리할 것"이라며 단기간의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의 단기 상승세)를 예견했다.
그 이유로 파버씨는 "선진국 정부의 강력한 재정집행에 민간부문이 반응하기 시작하면 유동성 때문에 주가가 일시적으로 반등할 수 있다"며 "그때 주식을 많이 갖고 있다면 팔아서 현금을 확보하고,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전체 자산의 10%는 주식, 10%는 금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인도, 한국 등 신흥국 증시의 경우 현재 과매도 상태이므로 단기간에 30% 이상 반등할 수 있지만 세계 경제가 몇 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반등세는 오래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경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세계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만큼 '부정적(negative)'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그는 "한국의 경우 호황기엔 더 큰 호황을 누리는 반면 세계 경제가 부진할 경우 더 큰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직 터지지 않은 버블로는 미국의 국채를 들었다.
그는 "현재 미국 국채는 3% 대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지만 3% 이상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가치는 거의 '제로'"라고 말했다.
또 미국 정부의 대규모 통화확장정책으로 달러화 약세 현상이 전망되는 만큼 "달러화보다는 원화를 매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파버 씨의 강연 내용에 대해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현재의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원인으로는 그린스펀 의장 시절때의 저금리 과잉 유동성을 제시한 것은 동의한다"며 "미국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은 일어날 수 있지만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