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격 폭락에 세계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국내외 반도체 회사들이 인력 감축, 생산라인 가동 중단 등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2년 동안 지속된 반도체 공급 과잉 흐름이 끝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 독일 일본 정부 등의 자국(自國) 업체 구제방안이 관련업계 판도를 흔들 최대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임원 30% 감축과 10년 이상 근속자의 희망퇴직 등을 포함한 인력조정 방안에 최근 노사가 합의했다고 7일 밝혔다.
이에 따라 임원 90명 중 20여 명이 회사를 떠나고 임금도 최고경영자(CEO)는 30%, 다른 임원들은 10∼20% 삭감될 것으로 보인다.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내년 1∼4월 전 직원이 2주간 무급휴가를 가는 등 노측도 고통을 분담하기로 했다. 당장 이달 25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기술사무직과 지원부서 인원들은 집단 휴가를 떠난다.
하이닉스 측은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10월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며 “이번 합의로 내년 인건비의 15%(약 1000억 원) 이상을 추가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도시바는 이달 27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욧카이치(四日市)와 오이타(大分)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기타큐슈(北九州)와 오이타 공장에서 800명가량의 비정규직을 감원키로 했다. 이 회사가 24시간 돌아가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은 2001년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조치는 올해 4∼9월 595억 엔(약 952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는 등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인한 회사 부담이 ‘눈 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미 퇴출설이 나돌고 있는 D램 반도체 5위 업체인 독일 키몬다는 내년 3월까지 드레스덴과 뮌헨 공장에서 1550명을 줄이는 등 전체 인력의 3분의 1인 3000여 명을 감원할 방침이다. 이 회사는 대만 난야와 합작한 이노테라의 지분 36.5%(약 4억 달러)를 10월 미국 마이크론에 매각한 바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3분기(7∼9월) 흑자를 냈던 삼성전자만이 “인위적 감산 및 감원은 없다”며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각국 정부도 경쟁적으로 반도체 회사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5일 하이닉스를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본보 6일자 B1면 참조
이에 앞서 대만 정부도 ‘대기업 구제계획’을 바탕으로 6000억 대만달러(약 26조4000억 원)의 자금을 마련해 난야, 파워칩, 프로모스 등 반도체 회사를 우선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독일 정부는 키몬다로부터 3억 유로(약 5670억 원)의 금융지원 요청을 받고 검토에 들어갔다.
고사(枯死) 위기에 처한 반도체업체들의 연명을 위해 천문학적 세금을 쏟아 붓는 데 대한 비판적 여론도 적지 않다. 여기에 통상마찰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어 각 정부의 지원 방안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가 향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