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송 씨는 배달된 TV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자신의 집에 있는 똑같은 29형 LCD TV보다 훨씬 작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송 씨는 TV 패널(유리화면)의 대각선 길이를 직접 재봤습니다. 29형 TV 패널의 대각선 길이는 74cm인데 그것은 68cm에 불과했습니다.
과연 6cm는 어디로 숨은 걸까요.
송 씨는 제조회사 고객센터에 물은 결과 “패널을 둘러싸고 있는 베즐(Bezel·테두리) 속에 나머지 6cm의 패널이 숨어 있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와 함께 “모델명과 함께 패널 크기인 68cm를 별도로 표기하기 때문에 제품 광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는 군요.
송 씨는 “모델명이 ‘29×××××’이기에 당연히 29형 TV인 줄 알았지 그 뒤에 나온 알파벳과 숫자를 일일이 챙겨볼 소비자가 얼마나 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기자도 제조회사에 다시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국내에선 브라운관 TV 패널 크기를 베즐까지 포함해 크기를 표기한다”며 “제품 소개에 그런 차이점을 알리지 않아 소비자들이 항의하기도 하지만 국내 가전업계 관행”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숫자 뒤에 숨은 함정에 빠지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습니다.
최근 한 피자회사에서 선보인 6000원짜리 점심메뉴를 보죠. 이 피자는 제휴카드나 통신사 회원카드 할인을 받을 수 없는 데다 음료나 샐러드가 포함돼 있지 않아 사실 3명이 가면 족히 3만 원은 내야 합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업체에서 자랑하는 ‘월 2000원대 전기료’도 사실 누진제를 감안하지 않은 허점이 있습니다. 유통업계에서 반값 또는 최대 70% 할인이라 내세우는 행사도 권장소비자가격에서 할인한 가격일 뿐 평상시 가격에 비해서는 할인 폭이 10∼20%에 그치는 때가 많습니다.
불황이다 보니 기업들이 싼 값을 내세운 ‘숫자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저렴한 가격인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처럼 지갑을 연 소비자들이 기업들의 씁쓸한 숫자 마케팅에 속아 다시 지갑을 닫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정효진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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