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안정에 큰 역할
《요즘 경제는 어느 구석을 들여다봐도 온통 나쁜 소식뿐인데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그렇지 않다. 1,000 선에서 지루한 공방을 벌이던 코스피는 어느새 1,150 선 근처까지 내달렸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 밑으로 내려갔다. 단지 지표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 내용이 바뀔 조짐도 있다. 올해 내내 ‘셀 코리아’를 이어가던 외국인이 다시 주식을 사기 시작했고, 얼마 전까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출렁이던 주가 흐름도 제법 안정적이다. 이에 따라 지난 두 달여간의 ‘공포 장세’가 이젠 어느 정도 진정된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이런 현상을 두고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제 바닥을 찍은 것이라는 진단부터 전형적인 약세장 반등(베어마켓 랠리)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 금융시장 안정 되찾나
10일 증시에서 코스피는 전날보다 40.03포인트(3.62%) 급등한 1,145.87로 마감했다. 코스피는 5일부터 4거래일 동안 14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증시 상승에 힘입어 이날 원-달러 환율도 달러당 53.20원 폭락해 1393.80원으로 내렸다. 환율이 140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달 14일 이후 한 달여 만에 처음이다.
이 같은 최근의 금융시장 안정화에는 외국인이 큰 역할을 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0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5300억 원가량을 순매수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외국인은 올 5월 9219억 원을 순매수한 뒤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월간 기준 순매수 전환을 하게 된다.
대신증권 성진경 시장전략팀장은 “외국인의 순매수에는 공매도 청산(쇼트커버링)이라는 소극적 요인뿐 아니라 단기 반등을 겨냥한 적극적인 전략도 포함돼 있다”고 분석했다.
한동안 널뛰기 장세를 보이던 증시의 변동성도 크게 완화됐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월간 기준 코스피 시장의 일중변동성(고가에서 저가를 뺀 값을 고저가의 평균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한 수치)은 12월 들어 3.42%로 10월의 6.11%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 美 경기부양책에 시장 기대감 반영
국내 증시가 이처럼 점차 정상을 찾아가는 것은 일단은 시장이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는 징표로 보인다.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들이 일부 효과를 내면서 금융시장이 안정될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미국 S&P 500 지수옵션의 변동성을 통해 시장의 공포심리를 보여주는 VIX 지수는 11월 20일 80을 웃돌았지만 현재는 60을 밑돌아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경제권의 경제지표 및 성장률 전망이 여전히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마당에 이 같은 금융시장의 봄바람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나대투증권 곽중보 연구원은 “반도체 해운 부문에서도 업종 지수나 가격지표는 나빠지고 있는데 관련 주가는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시장이 기존의 악재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미 10, 11월에 증시에 반영됐고 지금의 상승장은 과도한 하락에 이은 기술적 반등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경제지표와 금융시장이 따로 가는 점을 들어 바닥의 신호가 왔다고 해석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최근의 증시 반등은 전체 추세와는 관련이 없으며 금리 인하 등 각국의 정책에 따른 유동성 장세가 전개되는 과정”이라며 “과거의 약세장 반등 사례를 감안했을 때 증시는 경제 펀더멘털의 변화 없이도 1,200∼1,300 선까지는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