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노키아 등 고객사 2만개 넘어
■ 고성능 모터생산업체 에스피지
11일 인천 남동구 고잔동의 모터 전문기업 에스피지(SPG) 주차장. 국내 대형 전자회사의 에어컨 2대를 실은 트럭이 서 있었다. 이 전자회사는 내년도 출시할 신(新)모델의 모터 작동을 테스트하기 위해 직접 인천의 에스피지 공장까지 에어컨을 싣고 왔다. 보통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서비스하기 위해 찾아가기 마련이다.
에스피지 건물 2층으로 올라가보니 화상(畵像)회의장이 눈길을 끌었다. 이준호 에스피지 대표이사 부회장은 매주 월요일 오전 미국 중국 핀란드에 있는 해외 지사와 화상회의를 연다고 한다. 연간 매출액이 700억 원도 되지 않은 회사가 3개국에 해외 지사를 두고 화상회의를 하는 것 역시 흔치 않은 풍경이다.
최근 지식경제부가 주관한 ‘제1회 부품소재의 날’ 행사에서 이 부회장은 ‘부품소재 기술 석탑산업훈장’도 수상했다.
○ 모터 3500여 종류 생산
에스피지는 3500여 종류의 모터를 생산한다. 특히 힘을 가감(加減)하는 기능을 갖춘 ‘기어드(geared) 모터’ 부문은 국내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다. 기어드 모터는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양문형 냉장고의 얼음분쇄기, 의료용 침대, 정수기 등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 회사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은 약 45%. 국내 소비자보다 오히려 GE, 노키아 등 해외 전자회사에 더 잘 알려져 있다. 회사 홈페이지를 열면 가장 먼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중 하나를 선택하는 화면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고객사는 2만 곳이 넘는데 에스피지 전체 매출액의 5%를 넘는 단일 기업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며 “그만큼 경기가 나빠도 우리 회사가 입는 타격은 소폭에 그친다”고 말했다. 또 “올해 초부터 환율이 오르면서 환차익이 100억 원을 넘어섰다”고 귀띔했다.
많은 수출 중소기업이 가입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헤지용 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어떻게 키코의 유혹을 뿌리쳤을까.
이 부회장은 “환율 예측은 전문가조차도 정확한 판단이 힘들기 때문에 키코 가입은 투기와 같다고 봤다”며 “그 대신 환율의 변동폭이 작은 안전지대인 베트남에 공장을 추가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에스피지의 매출액은 628억 원. 올해는 800억 원, 내년은 100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에스피지의 대표 모터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여영길 상무는 ‘동력용 고효율 기어드 모터’ 생산라인으로 안내했다. 여 상무는 “지난해 국내 가전회사들이 일본과 독일에서 1800억 원어치를 수입한 모터인데 올해 에스피지가 국산화에 성공했다”며 “가격은 일본 제품의 70%로 잡았다”고 말했다.
에스피지는 양문형 냉장고 얼음분쇄기 모터시장에서 전 세계 시장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세계 1위 제품이 많다. ‘기술력 좋다’는 일본의 동종(同種) 중소기업까지 제쳤다.
이 부회장은 “국내 가전기업들이 90% 이상 일본에서 기어드 모터를 수입하는 것을 보고 ‘반드시 국산화에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1991년 창업했다”며 “처음부터 기술력에 승부를 걸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장과 함께 연구소를 세웠다. 아시아 최초로 국제적인 품질인증 연구소도 만들었다. 전체 200여 명의 직원 중 약 30%는 연구개발(R&D) 담당일 정도로 R&D에 대한 투자도 강화했다.
국내 가전 대기업이 하나 둘씩 에스피지의 기어드 모터를 시험 삼아 사용했다. 한번 테스트하면 다시 주문이 들어왔단다. 가격은 일본 제품의 절반인데 성능은 비슷하거나 더 좋았기 때문이다.
모터 분야에서 세계 최강인 일본에까지 소문이 나면서 일본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40억 원어치를 팔았고 올해는 10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