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침체 계속땐 2%대로 추가인하 가능성 내비쳐
우리-국민 등 시중은행들 수신-대출금리 인하나서
‘돈맥경화’ 풀리지 않으면 ‘유동성 함정’ 빠질 우려
한국은행이 11일 기준금리를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어 사상 최대 폭(1%포인트)으로 인하한 것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실물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춰 시중금리를 더 떨어뜨리고 은행권에 고인 자금이 실물로 흘러들어 가도록 ‘물꼬’를 트기 위한 것이다.
한은은 올해 및 내년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도 내비쳐 실물경제 침체가 지속되면 내년 상반기에는 ‘기준금리 2%대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 2%대 성장 대비한 선제적 조치
한은은 10월 9일 이후부터 지난달까지 세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25%포인트 내렸지만 시장금리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이 2%대 초중반으로 예상되자 ‘파격 인하’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날 “경기가 상당 기간 아주 나빠질 것이다. 사상 최저라는 부담은 있지만 사상 최저 금리로 가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은이 이날 금리를 큰 폭으로 낮추자 변동형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전날보다 0.69%포인트 떨어진 연 4.75%로 장을 마쳤다. 2006년 12월 19일(4.74%)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
은행권도 수신금리와 대출금리 인하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17일부터 수신금리를 연 0.50∼1.00%포인트 범위에서 내리기로 했고, 국민은행은 다음 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이번 주보다 0.70%포인트 인하할 예정이다.
반면 3개월물 기업어음(CP) 금리는 0.09%포인트 떨어진 연 7.16%로 거래를 마쳐 변동이 크지 않았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빨리 끝나 기업의 부도 위험이 크게 낮아지지 않는 한 회사채나 CP 시장의 금리는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 시중은행의 막힌 파이프를 뚫어라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이유는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하락과 기업 부도 위험 등을 우려해 자금을 적극적으로 돌리지 않아 기준금리의 인하 효과가 자금시장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기업과 은행의 신용위험이 커지면서 자금이 안전 자산인 국고채로 몰린 반면 회사채와 CP 수요는 뚝 떨어진 요인도 있다.
실제로 국내 은행들이 한은이 공급한 자금을 시중으로 돌리지 않고 기준금리를 받을 수 있는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를 통해 한은에 다시 예치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또 은행권이 BIS 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고금리의 후순위채를 발행해 시중의 여유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저축은행 금리가 최고 8.6%까지 올랐다.
한은은 이날 RP 거래에 은행권에서 10조4000억 원이 몰리자 매각 규모를 5조 원 정도로 대폭 낮췄다. 은행권이 ‘넘치는 돈’을 한은에 맡기지 말고 기업이나 가계에 공급하라는 뜻이다.
○ 2% 기준금리 시대 접어드나
한은은 이날 내놓은 통화정책 방향 자료에서 “앞으로 통화정책은 유동성 상황을 개선하고 경기의 과도한 위축을 방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운용할 것”이라며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도 내비쳤다. 내년 상반기에 기준금리가 2%대로 떨어질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신용경색이 풀리지 않고 돈을 빌려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낼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낮춰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수 있다는 것. 또 금리를 지나치게 낮추면 국내외 금리 차가 좁아져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환율이 오를 수도 있다.
이성태 총재도 추가 금리인하와 관련해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는 선까지는 가능한 것 아니냐”며 “3%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동성 함정::
금리가 너무 낮아서 금리를 더 낮춰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 현상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