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한 선제적 대책은 국회 등 정치권의 협조없이는 불가능”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한국의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더욱 과감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민간 경제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과감하고 신속한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서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말만 무성할 뿐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와 정치권의 정쟁(政爭)에 휘말려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장은 11일 이 연구소 주최로 열린 ‘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의 정책대응’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의 재정 여력은 주요국과 비교해서도 재정적자를 감당하기에 충분하다”며 “지금은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홍 실장은 “지금은 재정건전성이나 물가 상승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국민연금기금과 외환보유액, 한국은행 발권력 등을 모두 동원해 돈이 돌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심포지엄에서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현재는 가계와 기업의 소비 여력이 없다”며 “새로운 대책을 세우는 정치력과 대책을 신속히 집행하는 행정력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권 실장은 “시장의 기대를 앞서가는 선제적인 대책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국회 등 정치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정치권은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연구소의 김득갑 수석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당분간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가 득세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경제 흐름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우리(한국)만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신뢰의 위기’ 속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재정 확대가 있어야 금융 불안이 실물경기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도 이날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의 ‘2009년 경제전망 세미나’에서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부양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허 본부장은 “내년 한국 경제의 실질성장률이 2.4%에 머무를 것”이라며 “민간소비와 고정투자가 각각 0.2%와 1.3% 감소하는 등 내수 부진이 심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정부는 고용환경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비정규직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다양한 고용 형태 등을 허용해 노사가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갈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경기 연착륙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통화, 재정, 조세 정책과 금융시장의 자금중개 기능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글로벌 신용경색이 장기화하면 우량기업까지 흑자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강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정 부회장은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 정부의 운영 여건이 다른 나라들보다 낫다는 것”이라며 “정부 부채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77%의 절반도 안 되는 33%에 불과한 만큼 적극적인 재정지출 및 금리 인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이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의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SOC 투자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각종 사업의 조기 발주와 착공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