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장에서 투자자들 사이에 오가는 ‘행동 강령’ 중 하나다. 돈을 벌 수 있을 듯하면서 안 되고, 안 될 것 같을 때 오히려 되는 시장의 속성이 담긴 투자전술이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한 방향으로 믿는 것은 답이 아니었고, 잠시 그럴싸해 보여도 진정한 상식이 아니라면 결코 오래가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시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상식’은 무엇일까? 올바른 판단을 위해선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경제규모의 3배에 이르는 가계신용, 국내총생산(GDP)의 70%에 이르는 소비와 제로 수준의 저축률, 아직도 실현된 손실에 훨씬 못 미치는 은행의 자본 확충 그리고 만성화된 대규모 경상적자. 여기에 더해 내년에는 GDP의 7%를 넘는 재정적자와 사상 최대의 국채 발행이 예상된다. 이것이 미국의 현주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미국에서 일어나는 동안 바다 건너 중국에서는 최근 수년간 매년 30%에 이르는 설비투자가 집행됐다. 미국이 빚으로 굴러가던 시대에는 문제가 아니었던 아시아의 거대 설비가 이제는 글로벌 실물경제의 큰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실체적 고난 없이 금융위기가 얼렁뚱땅 넘어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는 교훈이다. 전 세계 초(超)저금리나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사태가 조금 호전될 순 있어도 문제의 본질이 치유될 수는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1조 달러 규모의 부양책이 GDP의 10%를 넘는 미국 금융기관의 손실을 단칼에 메우고 경기를 ‘회복 모드’로 돌려놓지는 못한다.
지금 뒤늦게 쏟아지는 정부의 비책들이 빚쟁이 소비자들을 당장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경기를 아는 기업들은 제로금리라고 해서 생산을 늘리지 않으며, 일자리가 불안한 소비자들은 이자가 싸다고 할부로 물건을 사지 않는다. 부자들 역시 연일 깎이는 자산가치에 지갑을 닫고 현금을 숨긴다.
어차피 공짜로는 다음 경기를 맞을 수 없다. 결국 은행은 부실 자산을 얼추 떼어내고, 부동산을 비롯해 공급이 과했던 부분에 어느 정도 정리정돈이 이뤄지고, 빚이 줄어야 비로소 건강하고 파릇한 신용의 새순이 돋는다.
지금 집행되는 경기부양책들은 이를 돕는 촉매이긴 하지만 한방에 치료하는 묘약은 아닐 것이다. 자칫 무리하고 잘못된 경기부양책은 그 부작용으로 시장 기능을 약화시켜 경기의 자생적 회복마저 막을 수 있다.
내년도 경기와 기업 사정이 예상보다 더 어렵다면 그것은 경기 회복을 앞당기기 위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채찍’일 것이다. 따라서 세계 경제에 얼룩져 있는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과 속도를 보면 앞으로 주가가 회복되는 길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어쩌면 당분간 어려움이 클수록 그 다음 회복과 치유가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