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불필요한 금융상품 정리 低利대출 갈아타야
《“남편이 벌어오는 돈이 한 달에 100만 원인데 대출금 갚는 데만 42만 원이 나갑니다. 생활비가 부족해 신용카드 5장으로 ‘돌려 막기’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돈을 갚을지 막막합니다.”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포도재무설계 강남지점을 찾은 주부 A(30) 씨 부부의 부채는 모두 5200만 원. 전세 아파트를 구하느라 신용대출을 받았고, 생활비가 부족해 마이너스통장과 카드론도 사용했다. 경기 불황에 의료기기 영업사원인 남편의 소득은 줄어들고 빚은 쌓여가고 있다.》
■ ‘부채 클리닉’ 포도재무설계 컨설팅 현장 취재
포도재무설계는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부채클리닉 재무컨설팅’ 사업자로 선정돼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소득 370만5000원 이하이고 신용등급 6∼10등급인 이들에게 무료로 부채 문제를 상담해주고 있다. 벌써 400명 이상이 상담을 신청했다.
이들은 대부분 당장 부채 규모를 줄이지 않으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최근 금융위기로 은행권이 일제히 대출 조건을 강화하고 있어 중하위 소득층의 부채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경제위기 및 잘못된 돈관리가 부채 키워
부채 감당을 못 하는 서민이 이처럼 많은 것은 우선 최근의 물가상승 및 경제위기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 또 높은 대출 금리 등 경제여건의 악화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소득에 비해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등 잘못된 부채관리로 빚을 키운 이도 많다. 금융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부채 부담을 안고 있는 이들은 대체로 ‘은행→신용카드 현금서비스·카드론→대부업체→불법 사금융’ 순으로 돈을 빌리다 결국 가정경제가 붕괴된다. 가정의 경제적 붕괴는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프로그램에서 상담을 받은 한 20대 직장여성은 월 소득이 200만 원에 불과하지만 명품 핸드백을 사기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100만 원을 사용했다. 이를 갚기 위해 캐피털업체에서 다시 돈을 빌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부채는 1년 6개월 만에 2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76세의 한 공장장은 15년간 기계를 개발하는 데 골몰한 끝에 드디어 성공했지만 그동안 쌓인 빚이 2억6000만 원으로 갚을 길이 없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기로 했다. 가계수표 발행에 일수(日收)대출까지 급한 대로 빌려 쓴 것이 화근이었다.
포도재무설계 강남지점 하창룡 지점장은 “이자를 내기 위해 고금리업체에서 돈을 빌리다 ‘부채의 늪’에 빠지는 이가 많다”며 “이자를 줄이는 방법을 모르거나, 잘못된 소비습관을 개선하지 못해 거액의 빚을 떠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평소 소액이라도 꾸준히 저축을”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당장 필요하지 않은 금융상품은 정리해 고리(高利)의 채무부터 갚고, 이자가 낮은 대출상품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A 씨의 경우 보험을 해약해 이자가 연 26%로 높은 카드론부터 갚아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것이 대안이다. A 씨도 일자리를 구해 수입을 늘리고 월 13만 원의 휴대전화비 등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굴착기 부속정비를 하는 B(40) 씨는 아내의 아르바이트 수입을 포함해 월 소득이 총 270만 원이지만 카드론, 보험약관대출 등으로 매달 내는 대출 이자만 170만 원. 10세, 8세인 두 자녀의 교육비로 빚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를 내년까지 분양받아야 하지만 4000만 원이 부족하다.
B 씨의 경우 일단 임대아파트 분양 계약을 하면 이를 바탕으로 은행에서 15년 장기상환 형식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남는 돈으로 이자 부담이 큰 카드론부터 갚고, 보험을 정리해 보험약관대출을 일부 상환하면 이자 부담을 매달 50만 원으로 줄일 수 있다.
이자가 새로운 빚을 만드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소액이라도 꾸준히 저축을 해야 한다.
하 지점장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내다 결국 해결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며 “현재 부채가 버겁다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 본인과 가족의 자산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