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일 내놓은 ‘제4차 공공기관 선진화계획’은 보수체계 개편과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방만한 공공기관의 운영체계를 바꿔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담고 있다. 내년부터 당장 연봉제와 성과급 개편으로 경쟁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한편 장기적으로 인력 감축과 자산 매각을 통해 조직과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겠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의 취지는 불필요한 공공기관의 기능을 줄이고 꼭 필요한 기능은 늘리는 것”이라며 “공공부문의 영역을 줄여야 민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지고 공공요금 인상 요인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급여개편
근무경력 대신 직무 난이도와 성과따라 보수 차등
임금피크제 도입하고 3번 고과 부진땐 ‘삼진아웃’
재정부는 내년부터 공공기관 내부에서 실질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노동유연성 확보가 가능하도록 전체 278개 공공기관에 연봉제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에 포함된 69개 공공기관 가운데 증권예탁결제원을 제외한 68곳은 연봉제를 이미 도입했거나 내년부터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단순히 근무경력에 따라 보수가 오르는 게 아니라 직무난이도와 직무성과에 연계해 보수를 받게 된다.
현재 공공기관 가운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봉이 오르도록 호봉제와 연봉제를 연계시키는 곳이 많다. 재정부는 하급 직원의 연봉 수준은 근무경력과 연계시키더라도 간부 이상은 능력과 성과 중심의 연봉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호봉제의 성격을 없앤 연봉제 표준모델을 만들어 내년 각 기관에 배포하기로 했다.
또 24개 공공기관은 일정 시점이 지나면 임직원의 보수를 낮추는 임금피크제를 내년부터 도입할 계획이다. 재정부는 임금피크제 표준모델도 만든다.
기관별로 성과부진자 퇴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내년부터 한국농촌공사와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성과평가에서 세 번 부진하다는 판정을 받는 임직원에게, 한국전기안전공사는 하위 1%로 평가받는 임직원에게 퇴출을 권유하기로 했다. 한전KDN은 경영실적에 책임을 지는 경영계약제도를 임원에서 각 단위 부서장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 밖에 재정부는 지나치게 간부직 비율이 높은 일부 기관은 이를 축소하도록 하고 홍보 기획 감사 등 지원인력을 적정수준으로 조정하도록 했다.
재정부는 앞서 12일 제9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공공기관 운영체계 개편방안’을 통해 수익률이나 고객만족도가 크게 낮은 중소 공공기관의 임원이나 직원이 성과급을 아예 받지 못하도록 정하기도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일부 공공기관에서 간부직 비율이 40%로 높거나 ‘이사대우’라는 특별직급을 만들어서 정년까지 근무하면서도 이사에 준하는 보수를 받는 사례가 발견됐다”며 “전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런 사례를 점검한 뒤 내년 1월 조직 효율화에 대한 공통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인력 감축
자연감소-희망퇴직 방식 3~4년간 단계적 축소
일정비율 신규채용 실시하고 청년인턴제 확대
재정부는 69개 공공기관의 정원을 현재 15만 명에서 13만1000명으로 1만9000명(13%) 줄일 방침이다.
많은 공공기관의 현재 인원이 정원보다 적어 강제적인 인력감축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영효율 10% 향상이라는 목표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인력감축은 불가피해 기관별로 3, 4년간 자연감소와 희망퇴직 등을 통해 조정해 나갈 방침이다. 현원이 정원을 넘는 일부 기관에서는 내년부터 곧바로 퇴직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재정부는 한국도로공사의 통행료 징수 업무를 민간에 맡기는 등 민간과 경합하거나 민간경제를 위축시키는 기능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공공기관의 정원을 4500명(39건) 감축하기로 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댐 건설인력처럼 기관별로 업무량이 줄었거나 고유 설립목적과 관련이 적은 기능도 정비해 5900명(79건)을 줄인다. 소규모 역사를 무인화하고 매표를 자동화하는 등 기관별 자동화 및 관리조직 개편도 실시해 9000명(143건)을 줄이기로 했다.
정원감축 폭은 한국철도공사가 5115명(15.9%)으로 가장 많고 △한국전력공사 2420명(11.1%) △한국수력원자력 1067명(13.1%) △한국농촌공사 844명(14.3%) 순이다.
한국전력은 9개 자회사를 합한 감축인원이 6000여 명에 이른다. 코레일유통(37.5%), 한국관광공사(28.9%), 한국방송광고공사(20.2%) 등 6곳의 정원 감축률이 20%를 웃돈다.
재정부는 각 기관이 감소분의 일정 비율만큼 신규채용을 실시하고 청년인턴제를 확대하도록 장려하기로 했다.
재정부 배국환 2차관은 “정원을 줄이지 않고 봉급을 줄이더라도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정부 정책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해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자산 매각
기관 핵심기능과 무관한 부동산 우선 매각대상
해외출장 준비금 없애고 골프장회원권 팔도록
재정부는 각 기관의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고 예산절감 등으로 10조 원 규모의 재정을 추가 확보하도록 해 자산이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게 유도하기로 했다.
공공기관별로 65건의 자산 매각으로 8조5000억 원의 수입을 얻게 된다. 기관 핵심기능과 관련이 적은 자산이 우선적으로 팔린다. 한국철도공사의 용산 역세권 용지(7조6000억 원)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노후 임대주택, 상록회관 등(2000억 원)이 매각 대상이다.
사업 폐지 등으로 활용도가 없어졌거나 지나친 임직원 복리후생을 위해 사 둔 부동산도 팔도록 했다. 한국마사회는 미리 확보해 둔 경주경마장 예정지 등(160억 원)을 매각하고 한국산업은행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 지점 터 2곳(150억 원)을 팔기로 했다.
또 한국가스공사의 직원 사택 327채(362억 원)와 증권예탁결제원의 골프장 회원권(21억 원) 등도 매각된다.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이 보유한 유휴 토지나 건물이 팔릴 경우에도 413억 원을 확보할 수 있다.
재정부는 공공기관이 보유한 230여 개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고 향후 출자회사의 지나친 설립을 막는 방안도 내년에 마련하기로 했다.
재정부는 또 공공기관 정원 축소에 따라 인건비 1조1000억 원, 삭감된 경상경비 5%(6000억 원) 등 1조70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하기로 했다.
이 밖에 기관별로 방만한 예산 집행을 시정해 추가 예산절감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자산관리공사는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을 없애고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해외출장 준비금을 폐지한다. 증권예탁결제원은 올해와 내년 인건비를 임원은 32%, 간부급은 5.1% 삭감하며 한국도로공사는 전 직원의 임금인상률을 동결하기로 했다.
재정부는 주무부처 중심으로 내년 2월까지 소규모 기타 공공기관의 경영효율화 계획을 검토해 10% 이상 효율성이 향상되도록 점검한 뒤 발표하기로 했다. 또 통폐합하는 기관의 경영효율화 및 통합조직 계획안도 내년 상반기에 발표한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 [공공기관 선진화계획] 1∼3차는 기관정비, 4차는 경영효율화에 초점 ▼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모두 4차례 공공기관 선진화계획을 발표했다. 1∼3차 계획이 민영화나 통합 등 기관 정비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4차는 경영효율화가 주된 목표다.
정권 출범 초기의 촛불시위, 9월 이후 확산된 미국발 금융위기 등으로 당초 계획을 밀어붙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전체적으로 ‘용두사미(龍頭蛇尾)’가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전체 선진화 검토대상 공공기관 319개 가운데 민영화 계획이 발표된 곳은 38개. 이 가운데 △일부 지분 매각 기관(5개) △선진화 이전부터 민영화 계획을 밝혔던 한국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7개) △당연히 민영화해야 할 공적자금 투입기관(14개)을 빼면 신규로 완전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기관은 12개밖에 없다. 그나마 한국전력 등 굵직한 공기업은 민영화 대상에서 빠졌다.
나머지 기관은 통합(38개), 폐지(5개), 기능 조정(17개·다른 항목에 중복 포함된 3개는 제외), 경쟁 도입(2개), 효율화(8개) 등으로 가닥을 잡았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