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기자의 디지談]통신시장 숨은 파수꾼 ‘위피’를 떠나보내며…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3시 07분


내년 4월이면 우리 곁을 떠나가는 ‘위피(WIPI)’를 아십니까.

위피란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만들어 거의 모든 국내 휴대전화에 탑재된 모바일 플랫폼입니다. 여기서 플랫폼이란 휴대전화에서 모바일 게임과 같은 콘텐츠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기차를 탈 때 플랫폼(승강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휴대전화(기차)를 통해 콘텐츠(승객)를 보내려면 표준화된 승강장인 위피를 거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옛 정보통신부는 2004년 5월 국내 휴대전화에 위피 도입을 의무화했습니다.

“SK텔레콤, KTF, LG텔레콤이 각기 다른 플랫폼을 이용하는 바람에 콘텐츠 업체들의 불편이 크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위피를 도입해 보니 ‘SK텔레콤용 위피’ ‘KTF용 위피’ ‘LG텔레콤용 위피’가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콘텐츠 가운데 이동통신 3사에 모두 호환 제공 가능한 것은 11.1%(2008년 6월 조사 결과)에 불과했죠. 당초 의도와 달리 승강장 모양이 서로 달라진 셈입니다.

더구나 “외국 기술에 대한 진입 장벽”이라는 이유로 통상 마찰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위피는 어느 한 기업의 소유가 아닌 ‘공통의 자산(資産)’이었기 때문에 ‘누가 위피 발전에 투자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소비자들은 위피 때문에 한국시장 진출을 꺼리는 미국 애플의 아이폰, 캐나다 림의 블랙베리 등 외산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았죠. 이 때문에 국내 휴대전화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10일 위피 의무화 해제를 결정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입니다.

하지만 위피는 5년 넘게 남몰래 상당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바로 한국 통신시장이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 업체인 미국 퀄컴이라는 한 회사에 종속되는 것을 막은 것이었습니다.

위피가 아니었다면 퀄컴의 CDMA칩에 이어 ‘브루(BREW)’라는 플랫폼이 한국 시장의 표준이 돼 엄청난 로열티를 가져갔을지도 모릅니다. 브루의 기세가 꺾인 지금 위피는 이제 마지막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위피의 추억’은 인위적 시장 보호의 달콤함과 쓴맛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한국 기업 및 시장의 성장통과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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