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업 직접 주도해 일자리 늘리고 소비 유도
Q: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나선다고 합니다. 정부의 이런 행동이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적자재정을 편성한다는데 적자는 나쁜 것 아닌가요?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하면서 세계 경제는 대공황을 맞았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파산하는 기업이 생겨났고 실업자가 늘어났지요.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지갑을 닫습니다. 시장에 물건은 넘쳤지만 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공장은 문을 닫고 더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습니다.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정부는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만 담당했습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둔 채 정부는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의 기능만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대공황이 닥치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대공황으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던 1932년 당선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존 케인스란 경제학자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관공서와 댐 등 엄청난 규모의 건설공사를 벌여 일자리를 만들었지요.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다시 지갑을 열어 물건을 사기 시작했고 멈췄던 공장들도 다시 돌아가게 됐습니다.
지금 세계경제는 80년 전 대공황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지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은 일자리를 줄이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소비를 줄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경제는 결국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때문에 국가 차원의 시급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럼 대공황 때 건설공사를 벌인 돈들은 다 어디서 났을까요?
국가(정부)가 돈을 내놓았습니다. 국가의 살림살이를 통틀어 재정이라고 합니다. 보통 국가가 한 해 동안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돈(세입)과 예산을 책정해 지출하는 돈(세출)을 합쳐 부르는 말이지요. 정부가 한 해 동안 쓰는 돈이 이 기간에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으면 적자재정(확대재정), 적으면 흑자재정(긴축재정)이라고 표현합니다.
정부가 경제의 흐름을 파악해 세금을 걷는 수준을 조절하고, 또 지출하는 액수를 조절하는 것을 재정정책이라고 부릅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세금을 줄이고 지출을 늘려 사람들이 돈을 더 쓰게 하겠지만 경제 사정이 좋으면 물가가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그 반대의 정책을 쓰겠지요.
이제 우리나라의 재정정책을 살펴볼까요. 국회는 13일 내년도 예산으로 284조5000억 원을 책정했습니다.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24조7000억 원, 일자리 관련 사업에 4조8655억 원을 투입하는 등 정부 지출을 올해보다 크게 늘렸습니다.
SOC는 공항 항만 철도 고속도로 댐 등 경제활동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형 시설물들을 말합니다. 정부가 SOC 확충사업에 대한 지출을 늘리면 그만큼 건설공사가 늘어나고 일자리도 늘어납니다.
일반적인 복지사업은 계속해서 지출을 늘려야 하지만 SOC 확충사업은 공사가 끝나면 지출을 바로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또 이 사업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대부분의 사람이 건설현장 인부 등 소득이 낮은 사람이어서 생활필수품의 소비를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대공황 때나 지금이나 정부가 대규모 SOC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입니다. 한편 정부가 내년에 거둬들이는 세금은 모두 175조4000억 원입니다. 내년에 정부가 지출하는 돈 가운데 세금이 직접 투입되지 않는 특별회계와 기금 등을 제외하면 약 19조70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쓸 곳은 많으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업이나 가계, 은행 등 민간에서 돈을 빌려야 합니다. 적자재정이 발생하면 정부는 국채를 발행합니다. 국채는 정부가 민간에서 돈을 빌리기 위한 일종의 차용증서입니다. 기업이나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서 이에 대한 차용증을 주고 나중에 갚을 때 일정 비율의 이자를 지급하게 됩니다.
재정이 적자가 됐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경제가 살아나면 세금이 더 많이 걷히고 지출은 줄어들면서 정부가 빌린 돈을 갚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경제가 계속해서 어려워져 적자가 쌓이면 국가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겠지요. 정부의 현명한 정책 수립을 기대해 봅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