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은행의 최고경영자(CEO)는 얼마전 경영진 회의 때 경쟁 은행과 평균 퇴근 시간과 업무량 등을 비교하며 "일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퇴근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질책했다. CEO의 이 같은 지적 뒤 회사엔 '몸조심해야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국내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선 내년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 것이란 걱정이 확산되고 있다.
●직장인 40%, "내년에 구조조정"
23일 동아일보가 채용정보업체인 '커리어'를 통해 전국의 20~40대 직장인 9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직장에서의 구조조정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에서 내년도 구조조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사 대상 직장인 중 40.3%(396명)가 '매우 높다'와 '높다'라고 답했다. 회사에서 경영진이나 부서장으로부터 구조조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도 37.6%(370명)나 됐다.
오호영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아직 기업들이 본격적인 구조조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아도 이미 직장인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라며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 느꼈던 '학습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장 유형에 따라 구조조정을 체감하는 데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본인이 구조조정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기업 직원은 32.6%(55명)가 '매우 많이'와 '많이'라고 답했다. 외국계기업 직원은 35.7%(25명), 중견기업 직원은 28.3%(169명), 벤처기업 직원은 29.6%(24명), 공기업 직원은 27.9%(19명)였다.
●퇴근시간 늦추고 외부 컨설팅 여부에 촉각
구조조정 체감 온도가 높아지자 몸을 사리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B은행의 경우 CEO의 '너무 일찍 퇴근한다'는 발언이 나온 뒤 간부급, 평사원 할 것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퇴근 시간을 늦추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한다.
회사가 유명 컨설팅업체로부터 컨설팅을 받는 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직장인도 있다. C그룹의 경우, '외환위기 때 회사가 컨설팅을 받은 뒤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컨설팅 여부에 신경을 쓰는 직원들이 부쩍 늘었다.
이 회사 직원 이모 씨는 "일부 직원들은 기획이나 전략부서에 있는 동료들에게 회사가 컨설팅을 언제 받는지 수시로 알아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