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으로 문 닫는 중소기업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현 씨는 고창의 명물인 복분자주를 팔아 올해 첫 수입으로 100억 원을 올렸다. 70년대 말 위독한 아버지를 간호하려 서울에서 귀향해 밭 세마지기로 농사를 시작한 지 30년 만의 쾌거였다.
낮에는 농부로, 밤에는 컴퓨터를 하는 회장님으로 사는 현 씨. "밭에서 무심코 전화를 받다가 '현 회장님이시죠'라는 말을 들을 때면 깜짝 놀란다"고 했다.
현 씨가 고창에서 복분자 재배를 시작한 건 1994년부터. 복분자 작목회를 결성하기 위해 3년간 주민들을 어렵게 설득해야했다. 서울의 대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주류시장에서 고창복분자주가 어떻게 판로를 개척하느냐가 고민이었다.
현 씨는 우선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국내 최대 주류업체가 복분자주를 만들자며 5번이나 제안을 해왔지만 그는 "우리 술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곳과 만들겠다"며 거절했다. 대신 강원도 정선의 오가자주로 기업과 농민의 성공신화를 쓴 적이 있는 국순당과 손을 잡았다.
현 씨의 두 번째 전략을 철저한 고급화. 그는 1년에 8차례에 걸쳐 수확한 복분자 중 품질이 가장 좋은 2번째, 3번째 복분자만 썼다.
그래서 작황이 아무리 좋아도 선택되는 복분자는 많지 않았다. 결국 "최고가 아니면 술을 빚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그렇게 만든 첫 작품 '명작 복분자'는 출시 두 달 만에 전량이 팔렸다.
시골 이장의 100억 매출에는 현 씨 특유의 뚝심도 작용했다. 인근 지역 농민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정치적 요인에 휘말려 일희일비할 때 그는 40명이던 작목반을 400명으로 키워 고급 복분자 생산에만 주력했다.
현 씨는 "한미FTA다, 경제위기다 해서 농민들이 외부요인에 휘둘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시장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생각해보고 질 좋은 농산물을 착실히 키우면 우리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자연히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