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송년 인터뷰]대니 라이프치거 세계은행 부총재

  • 입력 2008년 12월 30일 03시 02분


대니 라이프치거 세계은행 부총재는 2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0년 상반기까지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세계적인 무역량 감소로 수출에 의존해 온 개발도상국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해 “아직 내수를 진작할 여력이 있는 만큼 정부 지출을 늘려 국내 수요를 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대니 라이프치거 세계은행 부총재는 2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0년 상반기까지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세계적인 무역량 감소로 수출에 의존해 온 개발도상국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해 “아직 내수를 진작할 여력이 있는 만큼 정부 지출을 늘려 국내 수요를 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1997년 한국 외환위기 대책 주도 대니 라이프치거 세계은행 부총재

“한국 1,2년 경기부양 필요… 지금 행동 안하면 비용 더 클것”

《미국의 자동차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 주말 갤런당 평균 1.67달러(L당 0.44달러)였다. 올여름 갤런당 4달러를 넘을 때와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요즘 농담처럼 얘기한다. “그때가 좋았지(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이었으니까)….” 9월 중순 월가발(發)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미국 경제는 추락을 거듭해 왔고 세계경제에도 쓰나미(지진해일) 같은 충격이 몰아닥쳤다. 새해에도 추락은 계속될 것인가. 1997년 한국 외환위기를 비롯해 세계 경제위기 분석과 대책 마련을 주도해 온 대니 라이프치거 세계은행 부총재를 26일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에서 만났다.》

“2009년에도 경기침체(recession)가 계속되다 2010년 하반기에 회복될 걸로 보입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 사회적 투자에 나서는 게 특히 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행동하지 않을 경우 미래 코스트는 더 클 겁니다.”

라이프치거 세계은행 부총재는 “현재 시장의 자신감이 천천히 회복되고 있지만 매우 긴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엄혹한 전망을 제시했다.

―새해 전망부터 듣고 싶다.

“현재 미국 경제는 경기침체 단계인데, 이는 기술적으로는 두 분기 연속의 마이너스 성장을 뜻한다. 대부분의 경기침체는 평균 네 분기 정도 지속되지만 주택시장 같은 자산 거품의 붕괴와 결합된 경우 경기침체는 두 배 더 길게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올여름부터 경기침체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으므로 이를 토대로 역산해 보면 2010년 상반기까지는 경기침체가 이어질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세계경제는 어떤가.

“2008년의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5%였으나 2009년에는 0∼1%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은 2007년 7.9%였으나 내년에는 4.5% 정도가 될 걸로 추산된다.”

―한국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우리만 어려운 게 아니어서 물건을 내다팔 곳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내년에 세계 무역량은 2.1% 정도 줄어들고 개도국들은 수출의 심한 감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해외시장이 국내 수요 급락에 대한 단기적 해결통로가 되기 힘들다는 거다. 이럴수록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지출을 해야 한다. 사회적 프로그램과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한 투자가 긴요하다. 현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매우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미래의 비용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이미 많은 나라가 재정적 부양책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런 조치가 수요의 급락에 완충작용을 해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라이프치거 부총재는 “한국은 아직 국내 인프라 건설 및 소비를 진작시킬 여력이 있다. 만약 재정 적자가 아주 크지 않다면 지금이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할 시기다. 지난 50년 동안 없던 특별한 상황이다. 특별한 시기엔 특별한 일이 필요하다. 국내 수요를 1, 2년간 부양해야 하는 시기다”고 강조했다.

―소비의 나라로 불려 온 미국 시민들도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시장의) 자신감, 신뢰감이 가장 큰 문제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주식, 주택가격이 떨어지므로 소비의 위축은 사실 당연한 현상이다. 더 큰 걱정은 민간부문 투자의 위축이다. 내년과 후년에는 별로 투자가 없을 것이다. 소비, 투자, 수출, 정부지출 등 4가지의 수요 창출 요인 가운데 얼어붙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건 정부지출이다. 따라서 GDP의 3% 이상의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대 1조 달러의 대규모 부양책을 예고하고 있다. 악순환 사이클의 고삐를 조일 수 있을까.

“가능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양책은 충분히 커야 하며 신속해야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지난번 세금 환급은 규모가 너무 작아 대부분의 가구가 소비 대신 저축을 해버렸다. 공공 일자리 프로그램이 대규모로 시행되는 동시에 부양책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이게 일시적인 상황 진전이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부양책을 발표하고 있어 점진적으로 함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미국 경제가 어려울수록 민주당 정부는 더더욱 보호주의 성향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현재 내정된 차기 정부 경제정책 담당자를 보면 무역정책 방향이 급격히 바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실업률이 너무 급격히 올라가면 반(反)덤핑 같은 이슈에 더 많은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경제상황이 괜찮을 땐 상대국의 수출 보조정책 같은 걸 사례별로 눈감아줄 수 있지만 어려울 땐 더 예민해진다. 만약 상대국이 환율 조작이나 보조금 등으로 수출을 밀어붙일 경우 반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각국이 보호주의 장벽을 올리지 않는 동시에 수출정책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하는 시기다.”

―주요국 정부의 지금까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

“비판하기는 쉽지만, 그 누구도 문제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완벽히 준비된 정부는 없었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특히 우려됐던 문제는 금융부문이 단기 달러채무를 해외에서 차입해 부동산 같은 장기대출에 투자한 것이었다. 대출기간의 미스매치, 통화의 미스매치였다. 그런데 2008년에 한국을 보며 상당히 놀라는 것 중 하나는 금융부문이 약간 비슷한 여건에 있다는 것이다. 실수를 두 번 반복해선 안 된다. 금융부문은 충분히 강하지 못하며 노출돼서는 안 되는 위험에 노출됐다. 이는 어느 한 행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오랜 기간 쌓여 온 프로세스의 결과물이다.”

―한국 경제가 많이 취약한가?

“모든 나라 경제가 취약하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견고하다고 본다. 재무건전성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외환보유액도 매우 높은 수준이고, 기업들은 1997년에 비해 덜 취약하다. 재벌의 부채비율도 더 낮아졌다. 펀더멘털의 측면에서 보면 위험하지 않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이 옳다고 본다. 하지만 (시장의) 자신감은 정부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대중의 행동과 인식을 바꿀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올바른 궤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2009년에 경기침체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이 늘어난다. 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강한 사회안전망이 있기를 바란다. 국내 수요를 촉진하면 2010년에는 다소 나아질 것이다. 내가 한국 정부에 있어도 많이 다른 접근법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동차산업을 보면 미국의 경제 위기는 금융위기에서 파생된 혈액순환의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의 핵심 파트가 경쟁력을 잃은, 본질적 위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미 자동차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화시대에 변화에 뒤처져 온 부분이 있다. 또 금융위기가 할부판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산업은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지만 미국 경제 전체의 경쟁력에 대해선 낙관적으로 본다. 혁신과 위험감수의 도전정신 차원에서 여전히 앞서 있으며 매우 다이내믹한 시장이다. 현재 노동과 신용시장에 문제가 있지만 일단 이 위기를 벗어나면 신기술 이노베이션과 상품개발 등 주도적 부문들에서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장이고 선도자일 수 있다고 본다.”

라이프치거 부총재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1% 줄어들면 2000만 명이 추가로 빈곤의 덫에 걸린다”며 “지금이야말로 돈을 현명하게 써야 할 때다. 사회안전망 구축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라이프치거 부총재

△세계은행 부총재(경제관리 및 빈곤감소 담당)

△세계은행 내 경제학자 700여 명의 네트워크(PREM) 리더

△브라운대 경제학 박사

△주요 경력: 1997년 한국에 대한 30억 달러 융자 결정 주도, 1995년 아르헨티나 금융 구조조정 프로그램 주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국 근무, 브랜다이스대 부교수

△주요 저서: ‘동아시아로부터의 교훈’(1997년), ‘금융위기 예방’(1998년), ‘한국: 성숙으로의 이행’(1998년), ‘칠레: 정책 교훈’(1999년) 등

인터뷰=이기홍 워싱턴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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