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유가, 고환율의 영향으로 급등한 물가 탓에 1000원을 들고 나가도 제대로 쓸 곳을 찾기 어려웠다. 교통비부터 음식값까지 줄줄이 인상되면서 1000원짜리로 과자 한 봉지 사 먹을 수 없다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최근 경기 한파로 얼어붙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상점들이 가격 파괴에 나서면서 1000원의 몸값이 높아졌다.
● "정말 1000원이에요?"
서울 구로구 개봉역 앞 '천냥 야채 가게'에서는 감자 한바구니, 고추 한바구니, 고등어 한바구니 등 바구니 당 가격이 1000원이다. 바구니에 담은 양도 푸짐하다. 주부들로 북적이는 가게에서 만난 송경진(32·서울 구로구) 씨는 "야채 가격이 도매시장만큼 저렴한 데다 소량 구매가 가능해 퇴근길에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 '부자촌 왕뼈 수제비 감자탕' 은 올해 잔치국수, 콩국수 값을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렸다. 전영길(62) 사장은 "노인 분들은 경기가 안 좋으면 용돈이 끊기거나 지원이 줄기 때문에 2000원도 부담스러워 하신다"며 "가격을 내리니 그나마 손님이 줄지 않고 유지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근처 '초원식당'도 콩국수 가격을 15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춰 동참했다.
과자는 포장을 줄인 미니 상품들이 가격 인하를 주도하고 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 은 제크와 롯데샌드, 가나파이 등 9종의 과자 미니상품을 600~900원에 팔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 '자이헤어'에서는 앞머리 커트 가격이 1000원, 앞머리 파마 가격이 3000원이다. 대부분 미용실들은 머리 커트에 5000원, 앞머리 파마에 10000원 정도를 받는다. '자이헤어' 니키(34) 원장은 "앞머리를 자르러 하루에 20명 정도가 찾는다"며 "일단 찾아온 손님들의 30~40%는 파마나 염색 등 다른 서비스를 다시 이용한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 온-오프라인 1000원 샵도 매출 급증
1000원 샵의 매출도 급증했다. 대표적인 1000원 샵인 '다이소'의 경우 전년대비 방문 고객수가 30% 정도 늘어나자 100여 곳의 매장을 새로 열었다. 매월 500여개의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며 불황을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www.interpark.com)는 4만 5000여 개의 1000원 이하 상품을 팔고 있다. 올해 인터파크 인기상품 베스트10에 1000원 이하의 자전거용품, 초저가의류, 샘플화장품 등 절약형 상품들이 대거 올랐다.
'인터파크'는 초저가 상품의 인기가 계속되자 시계, 정리함, 휴지통, 냄비, 행거, 이불 등 소비자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생활용품을 모아 최대 75% 할인된 초특가로 선보이는 '99Shop'을 상시 운영중이다. '99Shop'은 7월 이후부터 매달 30%씩 매출이 증가했다.
● 1000원 공연, 1000원 주식도 있다
내년에는 단돈 1000원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천원의 행복' 프로그램이 올해보다 7회 늘어나 연간 18회가 된다. '천원의 행복'은 올해 11번의 공연에 2만 6529명이 찾았고, 관람신청 경쟁률도 평균 12대 1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좋아 내년 공연 횟수를 늘리기로 한 것이다.
서울 광화문 KT사옥에 자리잡은 'KT아트홀'서 매일 저녁 열리는 재즈 콘서트도 있다. 입장료 1000원에 유명 재즈 아티스트의 공연을 볼 수 있어 자주 비싼 공연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는 갈증을 풀 수 있는 오아시스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주식도 크게 늘었다. 30일 종가 기준으로 1000원 이하 주식은 코스피 125개 종목, 코스닥 341개 종목이다. 지난해 말 코스피 45개 종목, 코스닥 104개 종목이었던 것에 비하면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