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약세 출발 하반기 안정세”
“5, 4, 3, 2, 1. 2008년 원-달러 환율 종가 1259.5원. 수고하셨습니다.”
30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외환딜링룸. 시곗바늘이 장 마감을 알리는 3시를 가리키자 하루 종일 울려대던 전화벨 소리가 잠잠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외환딜러들은 서로 등을 토닥이고 악수하며 1년간 ‘롤러코스터 환율’과 씨름을 벌인 동료들을 격려했다. 김두현 외환은행 선임딜러는 “딜러 생활 8년 동안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낀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를 겪었던 서울 외환시장이 한 해 장을 마감했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내년 초 출렁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 기업과 은행, 연말 결산 환손실 크지 않을 듯
이날 환율 종가가 1250원대에서 마감하면서 기업과 은행이 연말 회계처리를 할 때 기준 환율로 삼는 31일자 매매기준율은 1257.50원으로 결정됐다.
기업과 은행의 연말 결산에 적용되는 매매기준율이 9월 말 원-달러 환율 종가(1207원)보다 57.50원 높은 셈이어서 기업의 환손실과 부채금액 증가나 은행권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키코에 가입한 487개 수출기업의 손실액도 환율이 1291원으로 오른 10월 말의 3조1874억 원보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 외환위기 이후 최대 원화 약세
올해 원-달러 환율은 933.00원으로 장을 시작했지만 2005년 이후 3년 만에 네 자릿수 환율로 장을 마감했다. 한 해 동안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25.7% 하락했다. 주요국 중에서도 영국 파운드화(―27.2%)에 이어 두 번째로 하락폭이 크다.
외환당국이 치솟는 환율을 잡기 위해 7월 한 달간 200억 달러를 쏟아 붓고 점심시간에 대규모 매도 개입에 나서 ‘도시락 폭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9월 중순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환율은 11월 24일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513.00원까지 상승했다. 10월 10일에는 환율의 하루 변동폭이 10년 10개월 만에 최고치인 235원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 내년 환율 변동폭 커질수도
당국이 연말 종가 관리에 나서 환율을 1250원대에 묶었지만 내년 초에는 환율의 상승 탄력이 강해질 수 있다. 달러가 상반기 약세를 보이더라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과 실물경기 침체로 상반기에 환율 변동 폭이 커질 가능성도 크다.
내년 상반기에 환율이 상승하고 하반기에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견해도 많다. JP모간은 내년 3월에 환율이 1350원에 이르다가 6월 말 이후 1100원대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와 내년 4월로 만기가 되는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 연장 및 규모 확대 등이 내년 외환시장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