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이코노미’ 현장을 가다]<1>덴마크 ‘베스타스’

  • 입력 2009년 1월 1일 00시 11분


에너지 부족 시달리던 덴마크 ‘바람과 함께 살아나다’

《세계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경제구조인 ‘그린 이코노미(Green Economy·녹색경제)’ 사회로 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가격 불안정으로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를 대량 투입하는 경제구조는 지속가능한 성장모델로서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을 선(善)순환시키는 새로운 국가 발전 패러다임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앞 다퉈 채택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10대 에너지 소비국으로서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저탄소 녹색성장’은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이 됐다. 한국 경제가 녹색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나침반 역할을 해줄 덴마크와 네덜란드, 스위스 등 선진국의 녹색성장 현장을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車 부품 만들던 회사가 오일쇼크후 ‘녹색 변신’

30년간 눈부신 성장… 올해 예상매출 26% ↑

국가 에너지 자급률 1%→145% 도약 일등공신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라네르스 시. 유틀란트 반도 동쪽의 작고 한적한 도시인 이곳에는 세계 1위의 풍력발전기 제조회사인 베스타스 본사가 있다. 이를 상징하듯 본사 건물 뒤편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었다. 지난달 8일 찾아간 본사 1층 로비 한쪽 벽에는 ‘베스타스는 5시간마다 한 대씩 세계 곳곳에 새로운 풍력 터빈을 설치하고 있다’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이 회사의 페테르 크루세 홍보부문 수석부사장은 “최근에는 주문이 늘어 4시간에 한 대꼴로 설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덴마크 서해안의 호른스레우 해상풍력단지. 육지에서 약 14km 떨어진 곳에 거대한 풍력발전기 80대가 마치 군대 사열을 하듯 좌우 560m 간격으로 20km²에 걸쳐 세워져 있다. 80대의 풍력발전기가 북해의 거센 바람을 맞고 힘차게 돌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덴마크의 에너지기업인 동에너지와 바텐팔그룹이 공동으로 투자해 2002년 말 조성했으며 약 1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160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녹색성장’ 국가 덴마크의 자랑거리가 된 이 풍력단지를 조성한 기업도 다름 아닌 베스타스다.

덴마크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녹색 경제 사회로 바뀌고 있다. 변신의 폭도 매우 넓다. 단순히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신재생에너지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세계적 기업을 키워내고 있다. 기존의 경제구조에서 그린 이코노미로 패러다임 시프트(전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는 일찌감치 그린 레이스에 뛰어들어 세계에서도 가장 빠르게 녹색경제 사회로 진입한 국가로 꼽힌다. 또 덴마크가 키워낸 베스타스는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한 녹색성장을 이어갈 회사로 평가되고 있다.

○ 녹색성장의 대표 주자가 되기까지

베스타스 본사를 방문하기 전 머무른 코펜하겐의 한 호텔. 미국 CNN 방송에는 ‘위험에 빠진 지구(Planet in peril)’ 기획시리즈물 소개와 함께 ‘모던 에너지의 넘버 원, 베스타스(No. 1 in Modern Energy, Vestas)’라는 광고가 20, 30분 간격으로 흘러나왔다. 베스타스는 현재 CNN에 활발하게 광고를 하는 기업 중 하나다.

크루세 수석부사장에게 ‘풍력이 왜 미래의 에너지가 아니라 모던(현대) 에너지인가’를 물었다.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석유나 가스처럼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걸 실현하고 있습니다.”

베스타스는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선박과 자동차, 건설장비 부품을 생산하던 회사로 신재생에너지나 청정에너지와는 큰 관련이 없었다. 1979년 처음으로 풍력 터빈을 만들었을 때에도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30년간 눈부신 성장을 하면서 지난해 세계 풍력발전기 시장의 23%를 점유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2007년까지 세운 풍력발전기만 63개국의 3만5000여 개에 이를 정도. 한국의 풍력발전기 시장 점유율도 80%에 이른다. 베스타스에 따르면 올해 매출은 72억 유로(약 13조1760억 원)로 지난해 57억 유로(약 10조4310억 원)에 비해 26%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마저도 글로벌 경기침체로 당초 계획보다 15% 줄여 잡은 목표라고 한다.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채용 인원도 크게 늘었다. 2007년 9월 말 현재 1만5000여 명이던 임직원은 지난해 9월 말 2만 명으로 늘었다. 1년 동안 하루 평균 14명씩 신규 채용한 셈이다.

○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베스타스의 성장에는 덴마크 정부와 의회가 추진하는 강력한 녹색성장 정책과 국민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풍력사업에 뛰어든 것도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뒤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성장 전략을 찾자’는 덴마크 정부의 의지와 이를 청정에너지에서 찾아야 한다는 비정부기구(NGO)들의 정책 아이디어 제안에서 시작됐다.

회사 관계자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유가가 하락해 풍력발전의 경제성이 상당 부분 떨어졌지만 정부와 의회가 미래를 내다보고 경제적, 제도적 지원을 해준 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에너지의 99%를 수입하던 덴마크는 1976년 ‘에너지 종합정책’을 세우고 착실히 정책을 실천한 결과 2006년 에너지 자급률을 145%까지 끌어올리면서 남는 에너지를 해외로 팔아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에너지 순(純)수출국이 됐다. 이런 정책적 지원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베스타스는 녹색경제에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실현하는 대표적 역할 모델이 됐다.

이 때문에 베스타스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지난해 9월) 베스타스 여름 파티의 슬로건은 ‘Making history(역사 만들기)’였습니다. 우리는 화석연료가 뒷받침됐던 산업혁명에 이어 풍력이라는 청정에너지로 ‘제2의 산업혁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죠.” 크루세 수석부사장의 말이다.

란더스·코펜하겐=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시골 섬 탄소중립지대로 만든 ‘녹색 사도’ ▼

삼쇠 섬 풍력-태양열발전 주민투자 이끈 헤르만센 씨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9월 덴마크인 쇠렌 헤르만센(사진) 씨를 ‘환경 영웅’으로 선정했다. 헤르만센 씨는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 동쪽에 있는 인구 4300명의 작은 섬 삼쇠에 살고 있는 주민이면서 삼쇠에너지아카데미 소장을 맡고 있다.

타임은 그를 두고 ‘삼쇠의 성공을 알리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는 녹색 사도(使徒)’라고 표현했다. 삼쇠의 성공은 무엇일까.

삼쇠는 1997년 전까지만 해도 낙농업과 돼지 사육이 주업인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1997년을 기점으로 대변신을 했다. 덴마크 환경에너지부가 실시한 재생에너지 아이디어 경영대회에서 우승해 ‘녹색의 섬’으로 선정된 것.

11년이 지난 지금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제로(0)인 ‘탄소중립지대’로 탈바꿈하면서 세계 에너지 전문가와 환경학자들이 주목하는 녹색성장의 표본이 됐다.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통해 감축하는 탄소량이 주민들이 생활하며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게 된 것이다. 헤르만센 씨는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재생에너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 설명하면서 주민의 자발적 투자를 이끌어 낸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육상 풍력발전기 11대와 해상 풍력발전기 10대를 세웠으며, 난방용으로 폐목재와 밀짚 등 바이오매스 소각시설 및 태양열 발전시설도 건설했다. 주민들은 이 시설에 개인 또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투자했다.

지속적인 투자 결과 에너지 비용을 낮추는 것은 물론 남는 에너지를 섬 밖으로 파는 수준에 이르렀다.

헤르만센 씨가 일하는 삼쇠에너지아카데미에도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이곳 홈페이지(www.energiakademiet.dk)를 방문하면 삼쇠의 녹색 성장 전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구가 매일 업데이트된다.

‘12월 22일 현재 삼쇠아카데미에서는 2760W의 전기를 생산해 1020W를 사용 중입니다. 남는 전력 1740W는 전력선을 통해 보내고 있습니다. 2008년 들어 현재까지 6827kW를 생산했고 이는 이산화탄소 5.33t을 줄인 것에 해당합니다.’

란더스·코펜하겐=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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