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계에서는 신동빈(54) 롯데그룹 부회장의 ‘불황 경영’이 화제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대다수 기업이 투자를 줄이는 것과는 달리 대규모 인수합병(M&A)과 개발사업을 통해 오히려 ‘몸집’을 키우고 있기 때문.
일각에서는 신 부회장이 후계 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현금 동원 능력이나 기존 사업 구조를 감안하면 신 부회장의 ‘결단’이 현명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 변하고 있는 롯데 경영문화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칠성음료는 이달 6일 소주 ‘처음처럼’을 만드는 두산주류BG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12월 22일 두산주류BG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불과 보름여 만이다. 전 주종(酒種)에 걸친 포트폴리오와 롯데의 거대한 유통망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지루한 가격협상 없이 전격적으로 인수를 마무리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과거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보수적인 경영문화를 가졌던 롯데그룹이 이렇게 빠르게 협상을 마무리한 데는 신 부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신중하게 현금을 확보해온 롯데에 요즘 각종 기업 매물이 물밀 듯 들어오고 있다”며 “금융 전문가인 신 부회장의 역량이 불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금융 전문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차남인 신 부회장은 2004년 롯데정책본부 본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섰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로 1980년대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근무했던 신 부회장은 금융위기가 감지되자마자 각 계열사에 운영자금을 미리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그 덕분에 국내 재계 5위인 롯데그룹은 부채비율(2007년 기준) 48%로 재무구조가 탄탄한 데다 그룹 내 8개 상장회사 중 금융사인 롯데손해보험을 제외한 7개 회사의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2조 원에 이른다.
국내 젊은 경영인 모임인 ‘V소사이어티’를 통해 최태원 SK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과 친분을 유지하는 신 부회장은 요즘 “어려운 때가 기회”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