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금융경색의 심화
③ 재정투자 부작용
‘눈이 9개에 꼬리가 9개 달린 괴물.’ 만약 미스터 마켓(Mr. Market·주식시장)을 상상해서 그리는 대회가 있다면 이런 작품이 장원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눈은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음을, 꼬리는 구미호 같은 영악함을 뜻한다.
주가는 늘 미래를 반영하는데 우리는 현재의 일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예측이란 역시 힘든 작업이다. 올해 주가가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제 아무리 괴물이라도 적어도 다음 세 개의 관문을 거치지 않고 대평원을 질주하는 재주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생각할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은 기업실적의 저항이다. 전 세계 소비자는 아마 올해 지갑을 꽁꽁 닫을 것이다. 지갑을 연들 쓸 돈이 넉넉하지 않고, 예전같이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려 쓸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특히 위기의 진앙인 미국 소비자들은 부채를 줄이느라 다른 것을 엿볼 겨를이 없고, 대규모 손실로 힘이 빠진 은행들은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을 늘리기 힘들 것이다. 반면 수출 중심의 아시아 기업들은 당장 남아도는 재고를 줄이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으므로 구조조정을 동반한 설비 축소의 아픔을 겪을 것이다.
두 번째 관문은 이런 실물경제의 어려움이 다시 금융에 미치는 악순환이다. 당초 주거용 부동산에서 시작된 미국의 금융 부실은 올해 상업용 부동산과 기업대출, 그리고 소비자금융으로 전이될 것이다. 어느 나라나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고 임금이 깎이면 대출 연체율이 오르고 집값이 또 떨어져 은행담보가 위협을 받는다. 금융위기 중반인 올해 지구촌 경제가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시련은 경제주체들이 안간힘을 다해 빚을 줄이는 과정에서 추가로 일어나는 금융경색이다.
세 번째로 증시가 시험받을 관문은 거의 ‘베팅’에 가까운 전 세계 통화팽창과 막대한 재정투자의 부작용에 관한 것이다. 미국은 이미 제로금리에 들어갔고 다른 국가도 이를 향해 달리고 있다. 중앙은행이 위험자산을 계속 사주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대다수 국가가 동시에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는 마당에 세계적으로 ‘숫자상의 돈’은 많이 풀렸어도 실질적인 자금 확보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증시는 경기부양 효과에도 민감하지만 동시에 부작용에도 예민할 것이다.
지금 주가는 눈앞의 어두운 재료는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추세는 결국 앞선 3가지 관문을 지나면서 비로소 형성될 수 있다. 각 관문은 어느 하나도 당장 결말지을 만만한 과제가 아니라 아주 장기전의 과제다. 항상 그랬듯이 증시라는 괴물은 얼마든지 위든 아래든 그 사이 짧은 등락과 변덕을 부리고, 사람들은 그로 인해 방향감각을 잃고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