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일어일문과를 졸업한 성은영(25·여) 씨는 지난해 말부터 외교통상부에서 행정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본 언론 기사를 번역하는 등 일본과에 배치돼 번역하는 게 주임무다. 성 씨는 “올해 4월 일본으로 가서 고대사를 공부할 계획인데 전공과 관련 있어서 외교부에서 일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실제로 외교관들을 가까이서 보니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2월 대졸 예정자 이모(27) 씨는 행정인턴에 관심이 없다. 그는 “정식 취업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단순 아르바이트”라며 “인턴으로 일할 시간에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인턴을 채용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100만 원짜리 임시 아르바이트’가 근본적인 실업 대책은 아니라는 냉소적인 평가도 나온다. 행정인턴의 업무 실태, 경제 파급 효과 등에 대해 다각도로 짚어봤다.》
업무실태- 외신번역 등 실무위주… 靑인턴 100대1 경쟁
파급효과- “청년실업 해소” “일자리 창출 미미” 엇갈려
문제점은- 연령-학력 제한… 1년미만 채용기간도 논란
○ 각 부처 2만5000여 명 채용, 다양한 실무 경험
“인턴에게 커피를 끓여오게 하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6일 국무회의에서 행정인턴제와 관련해 각 부처에 당부한 말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자칫 내실 없이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감을 표시한 것이다.
행정인턴은 취업이 힘들어진 대졸자들에게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취업을 대비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정부는 중앙행정기관 5259명, 지방자치단체 6505명 등 올해 공공 부문에서 총 2만5409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중앙 부처들은 대부분 지난해 말부터 인턴들을 뽑아 업무에 활용하고 있고 지자체들은 이달 중으로 선발해 각 부서에 배치할 예정이다. 이번 채용 과정에서는 청와대(100 대 1), 총리실(60.5 대 1), 법제처(59.3 대 1), 금융위원회(62.5 대 1) 등 주요 부처에 지원자가 몰리는가 하면 일부 지자체는 지원자가 정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편차가 심했다.
인턴들의 업무는 공공기관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편이다. 9일부터 지방청과 일선 경찰서에 인턴을 배치한 울산지방경찰청과 광주지방경찰청은 전공에 따라 사이버수사대, 증거분석, 영상물처리반, 안전시설 점검 등의 업무를 맡겼다.
또 통일부는 탈북주민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의 탈북자 교육과 취업알선 담당 등을 맡겼다. 감사판례 수집 분석(감사원),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단속(문화체육관광부), 금융시장 동향 파악 및 통계 분석(금융위원회), 하도급 실태 조사(공정거래위원회) 등 부처 특성에 따라 인턴의 담당 업무도 달라진다.
경찰청 이병무 단체지원팀장은 “인턴은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단순 업무는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자기 계발이나 경력에 도움이 되는 업무를 주로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 “진정한 일자리 창출 아니다”…보완책 필요
행정인턴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모든 공공기관에서 이처럼 대규모로 선발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인턴에게 주는 월급이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기 때문에 정부의 행정인턴제 본격 시행을 두고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논란이 되는 것은 과연 인턴제가 적절한 일자리 창출 대책이냐는 부분이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8일 경기북부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월급 100만 원 주고 10∼11개월 일하게 하는 청년인턴은 진정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다”라며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를 살리는 게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인턴제는 우리가 취업이라고 하는 일자리 개념은 아니고 경제위기로 인한 미취업 계층의 생활고를 완충하는 방법”이라며 “개념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어야 하는데 일자리 대책인 것처럼 알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만 18세 이상, 29세 이하의 대학(전문대 포함) 졸업자(올해 2월 예정자 포함)’로 규정한 인턴의 자격 조건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9일 “36세의 대학원 수료생이 ‘청년인턴제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연령 제한으로 응시하지 못해 차별을 받았다. 내겐 해당되지 않지만 학력을 대졸 이상으로 규정한 것도 엄연한 차별이다’는 진정이 접수돼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일반 기업과 달리 공무원 임용시험 시 가산점 등의 혜택도 없어 실무 경험의 실효성이 없는 데다 인턴 채용기간을 12개월 미만으로 한 게 ‘1년 이상의 임시직도 퇴직금을 줘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제도가 청년층의 ‘경력개발 프로그램’의 하나로 시행됐다면 아마 우수한 재원이 더 많이 지원했을 것”이라며 “일정 수를 정규직으로 돌리는 등의 다양한 혜택을 준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 행정인턴제는
공무원 정원의 2%(지방공기업은 3%) 규모로 채용하고, 비용은 국고보조금(75%)과 지방비(25%)로 구성된다. 4대 보험 지원을 받으며 주 5일(1일 8시간) 근무하고, 1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부처별로 10∼11개월 근무한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채용한다. 공무원이나 기업체 채용 시 가산점 등의 혜택은 없다. 다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향후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되면 인턴 근무 기간의 절반에 대해 호봉 가산을 받는다. 행정안전부 등은 우수 인턴에 대해서는 수료증이나 입사 추천서도 써 줄 방침이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부처·지방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