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정모(53) 씨는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아파트 49m²(15평)를 9억4000만 원에 계약했다.
정부가 용적률 확대 등 재건축 활성화 방안을 담은 8·21대책을 발표한 직후인 데다 중개업소 사장이 “4월에 10억5000만 원까지 간 아파트다. 지금이 ‘바닥’”이라며 매수를 권했기 때문. 하지만 이 아파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계속 떨어졌고 현재는 7억 원 이하에 급매물이 나와 있다. 정 씨는 “성급한 계약으로 앉은 자리에서 2억 원 넘게 손해 보게 됐다”고 탄식했다.
○ 중소형 30%, 중대형 40% 이상 하락 주목
매수자들이 나서야 할 부동산 시장의 ‘바닥’은 언제일까.
해가 바뀌면서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에 매수 문의가 증가하는 등 매입 시점을 저울질하는 수요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바닥을 쳤다’는 현지 중개업소 사장들의 주장과 달리 상당수 전문가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펴고 있어 매수자들이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시점보다 가격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남권과 강북권 아파트 가격의 고점 형성 시기가 각각 2006년 11월과 2008년 4월로 18개월이나 차이가 나는 데다 같은 강남에서도 단지별 하락폭이 10∼40%로 천차만별이기 때문.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강남 중소형은 고점 대비 하락폭이 최소 30% 이상, 중대형은 40% 이상 돼야 매입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실물경기 위축과 구조조정으로 부동산 가격의 추가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할인 매장의 전단 상품’처럼 낙폭이 큰 매물을 사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서울 송파 강남 양천-경기 분당 많이 내려
현재 고점 대비 40% 정도 떨어진 매물이 있는 곳은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와 경기 분당신도시 등이다.
송파구는 새해부터 들려온 제2롯데월드 허용 소식으로 최근 호가가 1000만∼2000만 원 정도 오르고 있지만 지난해 대규모 신규 입주 여파로 가격 하락이 컸다.
신천동 장미 1, 2차 129m²는 현재 7억6000만 원 선에 매물이 나와 있다. 고점이었던 2006년 말 11억9000만 원에 비해 4억3000만 원 떨어졌다.
문정동 올림픽훼밀리 아파트142m²도 2006년 말 13억 원보다 34.6% 내린 8억5000만 원 선이 시세다.
경기 분당신도시의 주상복합 아파트인 파크뷰 179m²는 2006년 말 17억2500만 원에서 현재 10억5000만 원으로 내렸다. 서현동 시범현대 155m²는 같은 기간 12억5000만 원에서 8억6500만 원으로 하락했다.
○ “바닥 쳤다” vs “일시적 반등일 뿐”
지금이 ‘바닥’이냐는 질문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근 한 달 사이 강남구 개포 주공 43m²는 5억4000만 원에서 6억5000만 원, 50m²는 6억5000만 원에서 8억 원, 56m²는 8억5000만 원에서 10억으로 1억 원 넘게 올랐다.
개포부동산 채은희 사장은 “불과 열흘 사이 20여 건이 거래되는 등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며 “지난해 11월 바닥을 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스피드뱅크 박 소장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 상승은 과다한 낙폭과 규제완화 기대감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박스권 장세’일 뿐 하락세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무작정 바닥을 기다리기보다는 아파트의 내재가치만큼 가격이 내렸다고 판단되는 급매물이라면 매수를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현재 부동산 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 전반에 불확실성이 큰 만큼 적어도 3월까지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6월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 회피 매물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4, 5월쯤을 노려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