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식품팀에서 일하고 있는 백진호(27·경북대 식품공학과) 씨. 지난해 입사한 백 씨의 토익 점수는 645점이다. 해외 어학연수나 일반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쌓은 적도 없다. 대부분의 대기업이 신입사원의 토익 점수를 800점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백 씨는 그야말로 ‘별종’인 셈이다. 백 씨는 “서류전형을 통과할 때까지는 영어 점수 등 객관적 기준이 영향을 미치지만 면접에서는 면접 점수가 우선”이라며 “영어 점수 올리기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서류전형에서만 붙으면 반드시 끝까지 가겠다는 생각으로 면접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
현장 체험 등 ‘맞춤형 준비’로 낮은 학점-영어성적 핸디캡 극복
그가 ‘실전 면접 연습’으로 애용한 방법은 교수님들과의 면담.
백 씨는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면접관들의 나이가 지긋한 점을 감안해 일부러 교수들과의 면담을 신청해 긴장되는 상황 아래에서 자신감과 함께 겸손하게 대화하는 법을 터득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백 씨는 서류전형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셨지만, 롯데백화점 서류전형에 합격하자 여기에 악착같이 매달려 합격했다. 물론 대학 시절 과(科) 학생회장을 하는 등 평소 리더십을 기르고 신문을 틈틈이 읽으면서 쌓은 ‘내공’도 입사에 보탬이 됐다.
경기 불황으로 채용 시장 전망이 밝지 않아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영어 점수 또는 학점이 낮거나 지방대 출신이라면 더욱 절망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평균학점이 2점대이거나 토익이 600점대인 등 이른바 ‘낮은 스펙’들의 구직자가 대기업에 입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에게 대기업 입사 비결을 들어봤다.
지난해 7월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에 입사한 박승기(30·전남대 전자공학과) 씨의 평균학점은 2.8점(4.5점 만점)이다. 그런 그가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에 발을 들여놓기까지는 대학 시절 오로지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린 게 주효했다.
박 씨는 “기업에서 스펙을 중시하는 것은 스펙 이외에는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라며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하고 싶은 분야의 성과를 쌓으면 스펙이 낮아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학교 틀에서 벗어난 곳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 ‘실무형 인재’가 되려고 노력했다. 특히 그는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재를 조기 발굴해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한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에 참여했다.
삼성전자 면접에서도 자신이 개발한 윈도 관련 프로그램을 설명해 큰 관심을 받았다.
대우인터내셔널 자동차부품본부 부품4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지현(27) 씨는 ‘70전 1기’를 한 경우다. 다른 회사에 입사 원서만 70군데 넣었지만 모두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부터 ‘상사맨’이 되려고 글로벌 경험을 많이 쌓은 게 결국은 효과가 있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대학 시절 캐나다에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말레이시아 패스트푸드업체에서 인턴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 중국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했고, 라오스에서 인터넷 봉사활동을 했다.
김 씨는 “졸업 학교가 소위 명문대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대기업 취업의 벽이 높았던 것 같다”며 “그러나 어딘가에 내가 다닐 회사가 있을 것이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올해 SK에너지에 갓 입사한 유현종(30) 씨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동해 가스전 개발에 참여했다. 한 달간 석유시추선에서 생활하면서 자원 개발 경험을 쌓은 ‘이색 이력’이 면접에서 큰 도움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 시절 지식경제부(당시 산업자원부)가 주최하는 논문 공모전에서도 석유 탐사와 관련된 논문으로 상을 받았다.
GS칼텍스 정성훈(27) 씨는 전남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호주의 한 연구소에서 바이오 에너지 관련 연구 보조 일을 하고, 애초 입사 목표로 삼았던 GS칼텍스에서 인턴을 한 경험이 입사에 도움이 됐다.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채용 시장에서는 간판보다도 실력이 당락을 결정한다”며 “스펙이 낮은데도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사람들은 면접관에게 열의를 보이고 평소 해당 기업 또는 직무에 꾸준하게 공을 들이는 등의 맞춤형 준비를 했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