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불안해진 외환시장
지난해 외환시장의 불안을 촉발시킨 사건은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사태(2008년 9월)였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 자본이 자국의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려고 한국 주식을 팔아 달러로 환전해 송금하면서 달러 부족으로 원-달러 환율이 폭등했다.
지금의 시장 불안은 미국 및 유럽 주요 은행의 실적 부진이 원인이다. 미국 씨티그룹은 지난해 4분기 82억9000만 달러의 적자를 냈고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은행도 약 48억 유로의 순손실을 봤다. HSBC는 증자를 해 최대 300억 달러를 조달해야 할 만큼 다급한 처지다.
이처럼 국제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한국에 투자한 해외 자본이 다시 발을 빼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비중은 지난해 12월 말 현재 외환위기 이후 최저인 28% 선까지 떨어졌지만 외국 자본이 추가로 이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달러 부족, 이미 가시화
달러 송금 수요가 늘면서 달러 부족사태는 가시화하고 있다.
우선 국내 외화스와프시장에서 달러를 구하기가 어렵다. 현물환과 선물환의 차인 ‘스와프포인트’가 9일 +0.50원에서 15일 ―0.50원으로 돌아선 것이 대표적인 징후다. 스와프포인트는 선물환율에서 현물환율을 뺀 수치인데, 이 수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그만큼 달러를 빌리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달러를 조달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한국물 외화채권에 대한 신용도는 지난주부터 다시 악화돼 2014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가산금리는 15일(현지 시간) 기준 3.86%로 7일에 비해 0.36%포인트 상승했다. 그만큼 높은 금리를 줘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 등이 해외 채권 발행에 성공했지만 시중은행은 여전히 장기 차입이 어렵고 공모 시장에서 채권 발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 “정부와 은행 선제대응 나서야”
전문가들은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이 심해질 수 있는 만큼 외환유동성을 늘릴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관련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말 체결한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이 4월 30일 종료됨에 따라 계약 연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만기 도래하는 은행권 단기 외화차입금(만기 1년 미만) 400억 달러를 장기차입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