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신 자초했지만 강한 뚝심 ‘강고집’
“문책성 인사” - “대통령 신임 여전” 엇갈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에 재앙이 닥치면 굿을 하고, 나라에 가뭄이 들면 임금이 나서서 기우제를 지냈다. 이런 제사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정부 경제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개각의 폭과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희생양’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거취를 암시한 것으로 해석됐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재직했던 ‘원죄(原罪)’ 탓에 10년 넘게 야인생활을 했던 강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시정개발연구원장으로 일한 인연을 발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던 그는 ‘747(임기 중 연간 7% 경제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로 대표되는 이 대통령의 경제 관련 공약을 집대성하면서 MB노믹스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시련이었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3월 초부터 원-달러 환율이 연일 급등(원화가치 급락)하자 외환시장에서는 ‘강만수 환율’이란 말이 유행했다. 그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대외균형 유지에 두고 환율 상승을 용인하거나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을 빗대 나온 표현이었다. 당시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편 것은 수출을 늘려 경기침체를 막으려는 의도였지만 국제유가의 고공 행진과 맞물려 물가가 치솟는 바람에 MB노믹스가 타격을 받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강 장관은 뒤늦게 “고환율을 유도한 바 없다”고 부인했지만 한번 상실한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경제팀 수장이면서도 금융 공기업 민영화를 놓고 금융위원회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한국은행과 금리 및 환율 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기(氣)싸움을 벌이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그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경제팀의 사령탑 역할을 할 경제부총리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강 장관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확산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장관 업무에 대한 적응기간을 거치면서 특유의 뚝심과 고집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9월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총 51조 원 규모의 재정확대 방안을 세워 경기부양책을 쓸 기틀을 마련했다.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을 놓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해지자 “중산층, 서민에게는 대못을 박으면 안 되고 고소득층에게 대못을 박는 상황은 괜찮은 것이냐”며 소신대로 종부세 완화를 밀어붙였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잇달아 성사시켜 외환시장 안정의 물꼬를 튼 것도 평가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그의 퇴진을 놓고 ‘문책성 인사’로 해석하지만 그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등 앞으로 다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