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만큼은 지켜야” 38% “기대수익 10% 미만” 46%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각서 써가면서 투자하겠나” 펀드 위축 전망

“증시 상승세 타면 투자성향 바뀔것” 반론도

올해 들어 주식형 펀드서 7600억 빠져나가

금융사, 분쟁우려 고위험 상품 판매 꺼릴듯

다음 달 4일부터는 은행 창구에서 한 시간 동안 줄을 서가며 기다리다 상담 5분 만에 펀드에 ‘뚝딱’ 가입하던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이유는 두 가지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금융사들은 ‘펀드 광풍(狂風) 시대’엔 필수품 같던 주식형 펀드를 아무에게나 권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막대한 판매 및 운용수수료 수익을 챙겨 온 은행 및 증권사, 자산운용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서 투자자들도 잔뜩 움츠러들었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본 데다 올해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이 나오면서 돈이나 여력이 있어도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 주식-펀드 시장 침체에 빠질까

본보 설문 결과 투자자 중 59%는 주식형 펀드 가입을 권유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금까지 누구나 손쉽게 펀드에 가입하던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간접투자 시장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국내 및 해외 주식형 펀드 계좌는 총 1675만 개였다.

물론 권유를 받지 못한다고 투자의 길이 봉쇄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든 투자결과를 책임진다”는 확인서를 쓰면 된다. 그러나 이런 각서까지 써가면서 위험자산에 투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융사들의 펀드 판매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와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복잡하거나 위험한 상품은 아예 팔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펀드시장의 위축은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사의 수익에 치명적인 타격을 미친다.

굿모닝신한증권 WM본부 김대홍 부장은 “증권사는 수익의 상당 부분이 주식 매매 및 펀드 판매 수수료에서 발생하는데 자통법 시행으로 투자 권유가 제한되면 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 증권사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말했다.

위험자산에 대한 이탈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23일까지 주식형 펀드 전체에서 7676억 원이 빠져나간 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채권형 펀드로는 1조5412억 원이 유입됐다. 지난해 상반기 매달 2조∼3조 원에 이르던 주가연계증권(ELS) 발행량도 올 1월(1∼22일) 들어서는 2400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펀드 가입자 수가 생각보다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판매사들 사이에 “가입 권유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준칙이 추후 개정될 소지가 있다. 주식시장이 상승세로 돌아서면 투자자들의 투자성향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크다.

이번 설문에서는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현상을 반영해 “원금 손실을 용인할 수 없다”는 답변이 많아 투자성향이 다소 보수적으로 계산됐다. 시장이 회복되면 주식형 펀드 가입 자격이 있는 적극형 투자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은행 정천석 상품개발부 팀장은 “투자성향이 보수적으로 나왔다 해도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려면 별도의 확인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간접적으로 권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젊고 고학력 사무직일수록 공격적 투자성향

이번 조사에서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은 △나이가 젊고 △학력이 높고 △사무직 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공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격투자형의 비율은 30대 이하에서는 8.1%였지만 만 60세 이상에서는 0.8%에 그쳤다. 또 대학원 졸업 이상의 학력에서는 공격형 투자자의 비율이 6.2%였지만 고졸 이하에서는 이 비율이 절반 수준인 3.1%에 불과했다. 올해 실제 투자하려는 금융상품에서도 젊고 고학력일수록 고위험상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금융상품 투자에 대한 지식수준으로는 투자자의 44.2%가 ‘주식과 채권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정도’라고 답했다. ‘투자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금융상품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정도’라는 답변이 25.3%, ‘투자 의사 결정을 스스로 내려본 경험이 없는 정도’는 20.3%였다. 금융지식 수준은 연령대별로는 40대, 학력별로는 대학원 졸업 이상의 투자자들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상품의 투자가능 기간을 묻는 질문에는 ‘3년 이상’이 31.8%로 가장 많았고 6개월 이내로 투자할 계획이라는 응답자는 10.4%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에서도 장기투자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됐음을 보여준다.

올해 주로 투자하려는 금융상품이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이 35.4%로 가장 많았다. 그만큼 많은 투자자가 금융시장 불안에 따라 관망하는 자세로 돌아섰거나 투자계획을 미처 세우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투자 의향과 태도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원금 손실 감수 정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8.3%가 ‘무슨 일이 있어도 투자원금은 보전돼야 한다’고 답한 반면 ‘기대수익이 높다면 위험이 높아도 상관 않겠다’는 답변은 10.9%에 불과했다.

올해 기대수익률도 크게 낮아졌다. 예·적금 이자 수준에 불과한 ‘10% 미만’이 전체의 45.8%나 됐고, 심지어 ‘10% 미만의 손실’이라는 답도 13.2%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자통법 내달 시행… 금융상품 가입전 조사 의무화

원금손실 감수 등 7가지 질문… 성향 5단계 분류

■ 투자자정보확인서란?

다음 달 4일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투자자는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하기 전에 ‘투자자 정보 확인서’를 작성해야 한다. 확인서에는 감내할 수 있는 원금 손실, 금융상품 투자 지식, 예상 투자기간 등 7가지 객관식 질문이 있다.

답변 결과에 따라 고객의 투자 성향은 안정형, 안정추구형, 위험중립형,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 등 5단계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61세 이상으로 △투자 손실을 용납하지 않고 △일정한 수입이 없으며 △금융지식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답했다면 ‘안정형’, 그 반대라면 ‘공격투자형’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동아일보, 굿모닝신한증권, 동서리서치의 ‘개인투자자 1000명 대상 공동 설문조사’는 자본시장통합법에서 규정하는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할 의향이 있는 투자자만 대상으로 했다. 은행 예·적금은 금융투자상품에 포함되지 않는 데다 가입할 때 본인의 투자 성향을 체크할 필요도 없다.

설문은 16∼19일 진행됐으며 1000명의 표본 결과를 얻기 위해 전화를 건 횟수는 1만8554회로 응답률은 5.39%였다. 남성 498명, 여성 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응답자의 거주지역과 연령대는 정해진 비율에 따라 분산시켰다. 신뢰 수준 95%에 표본오차는 ±3.1%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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