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회복돼야 국내도 나아질 것
[Q]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한 조찬 강연회에서“지난해 4분기를 경기 침체의 시작으로 본다면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하고 올해 1, 2분기가 그보다 높은 수준이라면 올해 성장률이 마이너스인지 플러스인지 잘 모르는 상황”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경기 침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시장경제에서는 생산과 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졌다가 침체에 빠지는 경기 변동이 반복됩니다. 경기 전망이 나빠지면 기업들은 호황기에 늘렸던 투자를 축소하고 생산량을 줄입니다. 기업이 생산과 투자를 줄이면 그만큼 일거리도 줄고 소득도 감소합니다. 지갑이 가벼워진 소비자들은 씀씀이를 줄이게 돼 민간 소비도 위축됩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재고 조정이 이뤄지고 자산 가격의 거품이 빠지면 경기도 회복기에 들어섭니다. 수요가 늘어날 조짐이 보이면 기업들은 먼저 투자를 늘리게 되고 생산과 일자리도 증가해 소비가 활발해집니다. 경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죠.
경기가 어느 정도 하강 국면에 이르렀을 때를 경기 침체라고 판단해야 할까요. 경기 침체는 흔히 ‘리세션(Recession)’과 ‘디프레션(Depression)’ 등으로 불립니다. 리세션은 경기 후퇴를 뜻하는 용어로 미국에서는 2분기 연속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보다 하락할 때를 말합니다. 경제 성장 속도가 미국보다 빠른 한국 등의 신흥시장 국가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경기 침체의 시작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많습니다. 디프레션은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리세션보다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고 길 때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입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디프레션과 리세션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2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실질 GDP가 10% 이상 급락하는 급격한 침체나 경기 침체가 3년 이상 지속되는 때를 디프레션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1929년 터진 미국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대표적인 디프레션에 해당합니다. 미국 경제는 1929∼33년 약 30% 마이너스 성장을 했습니다.
사울 에슬레이크 ANZ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리세션과 디프레션은 발생 원인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리세션은 통화정책의 긴축 이후 나타나지만 디프레션은 자산과 신용 거품의 붕괴로 인한 신용 경색과 자산가치 하락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처방도 다릅니다. 리세션 시기에는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조치가 적절하지만 디프레션에 빠지면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등의 통화정책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가 효과가 크다고 지적합니다.
한국 경제는 어떤 상황일까요.
한국은행은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기변동의 국면, 전환점과 진폭, 속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경기지표인 경기종합지수와 분기별 GDP 성장률 등을 종합해 경기를 판단합니다. 한은은 이 기준에 따라 한국 경제가 지난해 1월 고점을 찍고 하강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수출이 급감하고 내수가 위축되며 경기 하강 속도가 빨라지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치도 하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 실질 GDP는 3분기보다 5.6%, 2007년 같은 기간보다 3.4% 하락했습니다.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분기(―7.8%) 이후 최악이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1998년 4분기(―6.0%) 이후 가장 낮습니다. 경제 성장의 3대 축인 상품수출, 민간소비, 설비투자가 각각 3분기보다 11.9%, 4.8%, 16.1% 감소한 것이죠.
결국 이성태 한은 총재의 발언은 올해 1, 2분기도 전분기보다 경제가 뒷걸음을 친다면 지난해 4분기가 경기 침체의 시작이며 연간 기준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렇다면 경기는 언제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한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한 뒤 수출이 늘면서 이듬해 플러스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져 수출에 기대를 걸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 경제 부양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한국 경제의 회복 신호는 외부에서 올 것”이라며 “세계 경기와 수출 회복세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